아프리카서 사라진 코로나19 백신 수요, 현지 제약사 생산라인 개점휴업

▲ 아프리카 백신기업이 코로나19 백신 수주를 확보하지 못해 생산라인을 멈출 위기에 놓였다. 아프리카 백신시장의 규모가 코로나19 초기에 비해 축소된 것으로 파악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최대 코로나19 백신 수요처로 꼽히던 아프리카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가장 많은 물량을 확보해야 할 현지 기업마저 백신을 수주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12일 로이터 등에 따르면 아프리카 최대 제약사로 꼽히는 아스펜(Aspen)은 자체 백신 브랜드 ‘아스페노백스’에 대한 주문을 올해 단 1건도 받지 못했다.

아스펜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백신 생산시설에서 존슨앤존슨 계열사 얀센의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해왔다. 지난해 7월부터 아프리카 및 유럽 물량을 공급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1억 도즈(1회 접종분) 이상을 생산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코로나19 백신이 아프리카 사업자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진 첫 사례로 알려졌다.

이후 아스펜은 올해 3월 얀센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얀센의 백신 원료를 도입해 아프리카시장을 위한 아스페노백스 브랜드 제품으로 생산하기로 했다. 아스펜은 아프리카연합(AU) 소속 국가들과 거래를 통해 아프리카 공공시장에서 아스페노백스를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스페노백스는 물론 기존에 생산하던 얀센 백신마저 추가 주문이 불투명해졌다. 연간 4억5천만 도즈를 생산할 수 있는 백신 생산라인이 곧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아스펜 측은 얀센으로부터 백신의 주문을 받지 못할 경우 백신 생산라인을 마취제 등 다른 제품 생산용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아프리카 당국이 ‘아스펜 살리기’에 나섰다. 로이터는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아스페노백스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구매자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11일 보도했다. 아프리카에 흔치 않은 자체 백신 생산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백신 접종률만 보면 이번 아스펜의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프리카CDC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현재 전체 인구 중 20.5%만이 완전한 접종을 마쳐 코로나19 안전지대와 거리가 멀다. 어느 지역보다도 백신 요구량이 많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최근 접종률이 저조한 이유 가운데 백신 공급부족의 비중은 크지 않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아프리카CDC는 올해 2월 국제사회의 코로나19 백신 기부를 3~4분기까지 중단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존 은켄가송 아프리카CDC 소장은 미국매체 폴리티코를 통해 “백신 접종의 가장 큰 과제는 더 이상 공급부족이 아니라 물류 문제와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태도에 있다”고 말했다.

은켄가송 소장은 아프리카에 백신 유통을 위한 냉장 유통망(콜드체인)이 미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창고에 백신이 쌓여 있어도 현장에 이를 전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백신 접종과정에 소모되는 주사기와 소독제도 따로 확보해야 해 물류 부담을 가중시킨다.

백신 접종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백신 공급량과 실제 수요의 괴리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다.

아프리카 연구진이 지난해 12월 의학저널 란셋에 기고한 ‘아프리카의 코로나19 백신 기피:행동 촉구(COVID-19 vaccine hesitancy in Africa: a call to action)’ 논문을 보면 종교·문화적 배경, 백신 효과에 대한 정보 부족, 아프리카가 선진국을 위한 백신 시험장으로 활용된다는 의심 등이 백신 접종률 개선을 지연시키는 원인으로 꼽혔다. 

겉으로 드러난 접종률과 별개로 코로나19 백신시장으로서 아프리카의 사업환경은 결코 녹록치 않은 셈이다.

이같은 상황은 아프리카를 노리던 백신기업들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중저소득국가 공공부문 백신시장의 큰손인 글로벌 백신 공급 프로젝트 코백스(COVAX)향 수요가 불투명해졌다는 점이 크다.

미국 노바백스는 올해 코백스와 관련한 추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최근 2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밝혔다. 코백스가 아프리카 등 중저소득국가에서 백신 유통에 차질을 빚는 가운데 백신 공급은 늘어나고 있어 백신기업으로부터 새 물량을 받을 필요성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와 유바이오로직스 등이 글로벌 코로나19 백신시장에 가장 근접해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미 국내 코로나19 백신 품목허가를 받은 가운데 유럽 당국과 세계보건기구(WHO) 등을 상대로 허가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유바이오로직스는 백신을 허가받기 위한 막바지 임상을 진행하는 중이다. 두 기업 모두 국내뿐 아니라 아프리카를 비롯한 중저소득국가 공략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스펜 같은 현지기업조차 충분한 백신 수요를 확보하지 못해 공장을 놀릴 상황에 놓인 만큼 향후 해외 백신사업 전망이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아프리카 지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최근 급감한 점도 향후 백신 수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프리카CDC 자료를 보면 주간 신규 확진자는 지난해 말~올해 초 30만 명대를 기록했으나 올해 31주차(8월1~7일)에는 직전 주보다 57% 감소한 8807명에 그쳤다. 임한솔 기자
아프리카서 사라진 코로나19 백신 수요, 현지 제약사 생산라인 개점휴업

▲ 아프리카 주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데이터. <아프리카C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