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실트론이 웨이퍼 생산설비의 증설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규모는 크지 않다.

장용호 SK실트론 대표이사 사장이 차세대 웨이퍼와 관련한 투자를 위해 힘을 비축하고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SK실트론 웨이퍼 증설 신중히, 장용호 차세대 투자 위한 힘 비축하나

장용호 SK실트론 대표이사 사장.


12일 SK실트론에 따르면 실리콘(Si) 웨이퍼 생산량을 월 2만~3만 장 늘리기 위한 증설을 검토하고 있다.

실리콘 웨이퍼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메모리반도체에 쓰이는 폴리시드 웨이퍼(Polished Wafer, 고순도 다결정 실리콘으로 만든 웨이퍼)와 비메모리반도체에 쓰이는 에피텍셜 웨이퍼(Epitaxial Wafer, 폴리시드 웨이퍼 위에 단결정 실리콘층을 씌운 웨이퍼)로 나뉜다.

SK실트론이 증설을 검토하는 웨이퍼는 비메모리반도체용 에피텍셜 웨이퍼다.

SK실트론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시장에서 차량용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 비메모리반도체의 공급부족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며 “SK실트론도 월 2만~3만 장 수준의 증설을 통해 반도체회사들의 생산 확대를 뒷받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반도체업계에서는 SK실트론의 증설이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라는 시선이 많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21년 1분기 글로벌 웨이퍼 판매량은 1494만 장으로 집계됐다. SK실트론이 장수 단위의 웨이퍼 생산량을 공개하지 않으나 월 2만~3만 장은 시장에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SK실트론 관계자도 이번 증설계획을 놓고 “미미한 수준이다”고 말했다.

이에 장용호 사장이 SK실트론의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기 위한 여력을 비축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SK실트론은 현재 웨이퍼시장에서 입지를 탄탄하게 구축해 놨다”며 “실리콘 웨이퍼의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 않는 대신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 등 차세대 웨이퍼와 관련한 대규모 투자를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시장 조사기관 칩인사이트(Chip Insights)에 따르면 SK실트론은 2020년 글로벌 웨이퍼시장에서 점유율 11.31%로 5위에 올랐다.

글로벌 웨이퍼시장은 1위인 일본 신에츠케미칼부터 5위 SK실트론까지 상위 5개 회사가 시장의 90%를 점유한다. 이 5개 회사를 제외한 다른 제조사들은 점유율이 미미하며 5개 회사의 순위도 변동이 많지 않다.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는 고착된 시장 구도를 흔들기 위한 SK실트론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여겨진다.

장 사장은 지난해 2월 미국 소재회사 듀폰(Dupont)으로부터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사업부를 4억5천만 달러(5천억 원가량)에 인수하는 작업을 마쳤다.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는 열과 전압을 견디는 성능이 뛰어나 차세대 전력관리반도체용 웨이퍼로 각광받는다. 당시 반도체업계에서는 SK실트론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시장은 미국 크리(Cree)가 시장의 40%가량을, 미국 투식스(II-VI)가 35%가량을 점유하는 과점시장이다. SK실트론은 점유율 10% 미만의 3위다.

그러나 아직 시장이 초기 단계라 투자에 따라 앞으로의 판도가 달라질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 조사기관 360마켓업데이트(360 Market Updates)에 따르면 글로벌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시장은 2020년 규모가 2억9천만 달러(3326억 원가량)에 불과했다.

SK실트론이 SK그룹의 반도체 계열사 SK하이닉스에 웨이퍼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도 장 사장이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와 관련한 투자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전력관리반도체나 이미지센서 등 아날로그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8인치 웨이퍼 기반의 파운드리 전략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SK하이닉스에서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의 수요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관건은 투자여력이다. SK실트론은 기존 사업인 실리콘 웨이퍼와 신사업인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에 모두 투자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SK실트론은 2017년 SK그룹에 인수된 뒤로 연평균 4500억 원 수준의 영업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연결기준 부채비율이 2021년 1분기 말 기준 200.5%로 높은 수준이다.

기업이 순수 보유현금으로만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 사장은 SK실트론의 투자와 관련해 차입 부담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다만 반도체업계에서는 장 사장이 조만간 SK실트론에서도 대규모 투자와 관련한 솜씨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그가 SK그룹에서 손꼽히는 투자전략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SK실트론 웨이퍼 증설 신중히, 장용호 차세대 투자 위한 힘 비축하나

▲ SK실트론 본사가 위치한 구미 3공장. < SK실트론 >


장 사장은 2015년 지주사 SK의 PM2부문장(투자2센터장)으로 발탁돼 반도체 세정가스회사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 인수전을 지휘했다.

2016년과 2017년 SK머티리얼즈의 사내이사로 경영자문을 맡다가 2017년 12월에는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돼 ‘투자를 통한 성장’이라는 SK머티리얼즈의 경영기조를 확립했다.

장 사장이 경영자문과 대표를 지내는 동안 SK머티리얼즈는 산업가스회사 SKC에어가스를 인수해 자회사 SK에어가스(현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를 설립했고 탄산계열 반도체소재회사 한유케미칼을 인수해 자회사 SK머티리얼즈리뉴텍을 세웠다.

SK머티리얼즈가 일본 트리케미칼과 설립한 반도체용 전구체 합작사 SK트리켐, 일본 쇼와덴코와 만든 반도체용 특수가스 합작사 SK쇼와덴코도 장 사장의 투자성과다.

장 사장은 잇따른 투자를 통해 SK머티리얼즈를 반도체 세정가스 6종의 생산회사에서 60개 이상의 반도체소재를 생산하는 회사로 바꿔놓았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 12월 SK실트론 대표이사 사장으로 옮겼다.

장 사장이 SK머티리얼즈에서 보인 성과로 SK실트론에서도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와 같은 미래 성장동력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SK실트론 관계자는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와 관련해 아직까지는 추가 투자검토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 사업 인수 뒤 안정화 단계를 밟고 있으며 큰 투자는 사업이 충분히 안정된 뒤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