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대표적 IT기업들과 연합전선을 펼치며 비대면시대에서 경쟁력을 키울 길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CJ그룹의 주요사업인 택배, 커머스, 콘텐츠 플랫폼시장 등은 사실상 업종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IT기업들과 무한경쟁하는 상황인데 사업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Who] CJ IT기업과 짝짓기 확대, 이재현 '디지털 전환 아직 기회'

이재현 CJ그룹 회장.


6일 재계에 따르면 CJ그룹은 지난해 네이버에 이어 최근 엔씨소프트와 손을 잡으며 대기업 가운데 IT기업과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움직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CJENM은 올해 안에 엔씨소프트 함께 콘텐츠사업 협업을 위한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또 네이버와는 주식 맞교환까지 진행하며 콘텐츠분야에서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CJ대한통운도 네이버와 손잡고 주문부터 배송 알림까지 모든 과정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다. 수요예측과 물류자동화 등의 디지털 물류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들어 스마트 물류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재현 회장이 전격적으로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CJENM, CJ대한통운의 주요사업에서 디지털 경쟁력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CJ대한통운의 경쟁상대는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와 같은 택배업체뿐만 아니라 쿠팡 등 이커머스업체로 확대되고 있다. 쿠팡은 연간 물동량이 약 5억 박스 규모로 ‘로켓배송(익일배송)’을 앞세워 물류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CJENM의 주력인 콘텐츠, 방송 플랫폼, 커머스사업도 IT기업의 전쟁터가 되고 있다.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쇼핑공룡’으로 변신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아마존, 구글, 넷플릭스 등 IT기업들이 관련 사업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CJ그룹은 지난해까지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로 CJ그룹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수혜를 입은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을 제외하고 CJENM, CJCGV, CJ프레시웨이, CJ푸드빌 등 대부분의 주력 계열사들이 모두 실적 부진을 겪었다.

손경식 CJ그룹 회장도 4일 신년사에서 “팬데믹(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우리 그룹이 외부 충격을 극복할 수 있는 초격차 역량에 기반한 구조적 경쟁력을 아직 갖추지 못했음을 확인하게 됐다”며 “철저한 체질 개선을 통해 패러다임 시프트(전환)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현 회장은 올해 각 계열사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CJ그룹이 비대면시대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과 협력, 인수합병, 비핵심사업 매각 등도 활발히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 회장은 그동안 시대의 흐름에 따라 CJ그룹의 사업구조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켜왔다.

CJ그룹은 본래 제일제당(현재 CJ제일제당)을 중심으로 한 매출 2조 원 안팎의 식품기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9년 제일빌리지(현재 CJCGV)를, 2000년 에스앤티글로벌(현재 CJENM)을 설립하며 종합생활문화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또 2011년에는 물류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대한통운(현재 CJ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식품, 물류, 엔터테인먼트 3각사업체계를 완성했다. 대신 2018년 CJ헬스케어(현재 HK이노엔), 2019년 CJ헬로(현재 LG헬로비전) 등 비주력사업을 매각하며 CJ그룹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이 회장은 각 계열사별로 비대면시대에 맞는 체질 개선을 통해 위기 속에서 성장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우선 CJENM은 미국 월트디즈니의 사업모델을 참조해 변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월트디즈니는 테마파크, TV방송사, 영화사 등의 사업을 보유하고 있는데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모든 사업에서 성장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고 코로나19로 테마파크와 미디어사업에서 직격탄을 맞으며 기업가치가 급감했다.

하지만 현재 월트디즈니는 중장기적 성장 잠재력이 큰 기업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2019년 11월에 출시한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 플러스’가 론칭 1년2월 만에 구독자 8680만 명을 유치하며 가입자 수 2억 명의 넷플릭스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CJENM도 지난해 10월 온라인 동영상서비스 티빙을 분사하면서 본격적으로 관련 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오늘Who] CJ IT기업과 짝짓기 확대, 이재현 '디지털 전환 아직 기회'

손경식 CJ그룹 회장.


티빙은 최근 최고기술책임자(CTO)에 조성철 전 네이버 동영상 클라우드 개발담당을, 최고제품책임자(CPO)에 이우철 라인웍스 프로덕트 매니저를 영입했다. 네이버는 티빙 지분 투자에 참여하는 동시에 멤버십 결합상품도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CJ대한통운은 미국 아마존의 풀필먼트(물류 일괄대행)서비스를 도입해 확대하고 있다.

풀필먼트는 물류업체가 판매업체로부터 상품을 위탁받아 배송부터 보관, 재고관리, 교환과 환불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물류 일괄대행서비스다. 모든 절차를 맡기기 때문에 그만큼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데 아마존을 시작으로 Fedex, DHL 등 글로벌 물류기업도 풀필먼트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그동안 전국 단위의 배송거점을 활용한 일반택배로 수익성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늘어나는 전국 단위의 온라인 주문 수요를 감당하고 배송 속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풀필먼트서비스로 점차 사업구조를 변화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실적 반등에 성공한 CJ제일제당과 최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CJCGV, CJ프레시웨이, CJ푸드빌 등도 급격한 사업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해 연말인사에서 CJ그룹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대폭 물갈이하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비대면시대가 오면서 CJ그룹과 같은 전통적 대기업들이 성장성 측면에서 의심을 받고 있다”며 “올해 이 회장은 이와 같은 시각을 잠재울 수 있는 구체적 사업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