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에서 중국 법인 DICC에 얽힌 소송 리스크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두산그룹이 소송에 따른 우발채무를 떠안지 않는다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뒤에 부담을 상당히 안게 되는 만큼 현대중공업지주, GS건설, 유진기업 등 전략적 투자자들을 포함한 인수적격후보(숏리스트)들의 셈법이 복잡해질 수 있다.

◆ DICC 소송의 우발채무를 두산그룹이 부담하지 않게 되나

11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위한 본입찰을 앞두고 이상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소송 리스크 변수로, 인수전 참여기업 셈법 복잡해져

▲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매각주관사 크레디트스위스는 17일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의 본입찰을 진행할 계획을 세워뒀다. 그런데 인수적격후보 6곳 가운데 재무적 투자자 1곳이 인수전 완주 의사를 접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앞서 예비입찰을 거쳐 현대중공업지주·KDBI(한국산업은행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 GS건설·도미누스프라이빗에쿼티 컨소시엄, 유진기업 등 전략적투자자 3곳과 MBK파트너,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 이스트브릿지파트너드 등 재무적투자자 3곳이 인수적격후보로 선정됐다.

9일부터 이날까지 진행된 두산인프라코어의 현장 예비실사에는 5개 기업만이 참여했다.

전략적투자자 3곳은 모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재무적투자자 1곳은 두산인프라코어 중국 법인인 DICC의 소송과 관련한 최대 1조 원의 우발채무 우려에 인수전을 이탈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DICC의 상장 무산에 따른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 행사와 관련해 IMM프라이빗에쿼티, 미래에셋자산운용, 하나금융투자프라이빗에쿼티 등 사모펀드 연합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1심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가, 2심에서는 사모펀드들이 각각 승소했으며 이르면 올해 안에 3심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투자업계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의 주체인 두산중공업이 인수적격후보들에 이 소송으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채무의 해결방안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말이 퍼지고 있다.

지금까지 시장에서는 DICC의 우발채무를 두산그룹이 짊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와는 정반대의 움직임이다.

두산그룹과 인수적격후보 관계자들 모두 관련 내용을 알 수 없거나 확인해 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다만 두산중공업이 실제로 우발채무 부담을 짊어지지 않으려 한다거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섰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이 매물로 내놓은 두산인프라코어 보유지분 전량은 36.07%에 그친다”며 “채무가 발생할 때 모두 책임지겠다고 한다면 형법상 배임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만큼 두산중공업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두산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이 급박하지 않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두산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에 소극적으로 돌아선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애초 두산인프라코어 예비입찰에 참여한 기업들은 대부분 두산그룹이 우발채무 리스크를 떠안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뒤에 인수전 참전을 공식화했다. 현대중공업지주가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산중공업이 인수적격후보들에 우발채무 문제의 해결방안을 요구한 것은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작업을 중단하기 위한 것이라거나 혹여 매각하더라도 우선협상대상자와의 협상 과정에서 매각가격을 최대한 높이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 경영 정상화방안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한숨을 돌렸다.

지금까지 지주사 격인 두산의 모트롤BG(유압기기사업), 두산솔루스, 두산타워 등 계열사와 자산을 매각해 2조2076억 원을 확보했다. 채권단과 약속한 올해 1조 원 마련은 이미 초과달성했다.

물론 두산그룹이 경영 정상화방안의 최종 목표인 3조 원을 마련하기까지는 아직 8천억 원가량이 남았다. 그리고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이 이를 달성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로 적합한 것도 사실이다. 

11일 장 마감가격을 기준으로 두산인프라코어 시가총액은 1조8610억 원이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매물로 나온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6.07%의 가치는 순수 지분가치만 6천억 원 이상,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더하면 8천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두산그룹이 꼭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으로 8천억 원을 마련할 필요는 없다.

이미 두산건설이 인수합병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으며 두산중공업의 화공플랜트 자회사 두산메카텍, 두산중공업의 워터BG(수처리사업부문) 등도 꾸준히 잠재적 매물로 거론돼 왔다.

시장은 두산건설의 가치를 2천억~3천억 원가량, 두산메카텍을 4천억 원, 두산중공업 워터BG를 3천억 원가량으로 각각 평가한다. 두산그룹에는 이들을 매각해 남은 8천억 원을 확보할 수 있는 선택지도 있다.

두산그룹이 두산건설 매각을 놓고 우선협상대상자 대우산업개발과 최종 계약에 실패한 사례를 감안할 때 이런 기업의 매각은 두산인프라코어 매각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채권단은 일찌감치 두산그룹에 경영 정상화방안의 이행을 재촉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최대현 KDB산업은행 부행장은 6월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두산그룹의 자산 매각은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자율적으로 진행하도록 할 것이다”며 “기한을 정해 놓으면 쫓기게 되고 적정가격 아래로 매각이 진행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밥캣과 함께 두산그룹의 양대 현금 창출원이다.

두산그룹으로서는 남은 8천억 원을 확보하기 위해 다소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두산인프라코어가 사업에서 내는 이익으로 두산중공업의 경영 정상화를 돕도록 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뜻이다.

◆ 현대중공업지주 GS건설의 인수 2파전, 우발채무 리스크에 셈법 복잡해져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적격후보 가운데 전략적 투자자는 현대중공업지주, GS건설, 유진기업 3곳이다.
 
두산인프라코어 소송 리스크 변수로, 인수전 참여기업 셈법 복잡해져

▲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회장(왼쪽), 허윤홍 GS건설 신사업부문 대표 사장.


투자업계나 건설업계 등 각계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이 사실상 현대중공업지주와 GS건설의 2파전으로 좁혀졌다고 본다.

유진기업이 자금력이나 규모 면에서 가장 열세이면서도 아직까지 명확한 자금조달방안을 내놓지 않은 반면 현대중공업지주는 KDBI(한국산업은행인베스트먼트)와, GS건설은 사모펀드 도미누스프라이빗에쿼티와 각각 컨소시엄을 맺어뒀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별도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현대중공업지주가 2251억 원, GS건설이 1조5211억 원이다.

자금력을 고려하면 두 유력 인수후보 가운데 현대중공업지주가 우발채무 리스크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실제 현대중공업지주는 이 문제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지주 관계자는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는 DICC 소송 문제 등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며 “아직 거래의 구조조차 안 짜여진 상황이다”고 말했다.

GS건설로서도 현대중공업지주보다 여유가 있을 뿐이지 인수가치를 뛰어넘는 수준의 우발채무 리스크가 달가울 리는 없다.

다만 현대중공업지주는 건설기계 자회사 현대건설기계와 시너지효과를 노리는 차원에서, GS건설은 건설사업과 연계한 신사업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의지가 강력하다고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DICC 소송의 우발채무를 전부는 아니더라도 납득 가능한 수준으로 부담할 것을 약속한다면 현대중공업지주와 GS건설 모두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을 완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