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프린트      창닫기
기업과산업
3대 경영세습의 '반면교사' 대한전선의 몰락
설경동-원량-윤석 58년 역사, 3세 등장 9년만에 마감 교훈은?
강우민 기자 wmk@businesspost.co.kr | 입력 : 2013-12-02 13:16:44

오너와 전문경영인 위험한 동거에 견제장치 작동하지 않아
회장 경영공백에 3세 전면등장하는 한화그룹 등 교훈 삼아야  

갑작스런 오너 회장의 죽음, 대한전선의 불행은 이렇게 출발했다. 2004년 3월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이 숨졌다. 뇌출혈이었다. 향년 63살. 대한전선 창업주 설경동 회장의 3남으로 회사를 물려받아 삼성 LG 등과 치열하게 전쟁을 치러왔던 그였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맞은 경영공백이었다.

2013년 10월 설윤석 대한전선 사장이 물러났다. 단순 퇴임이 아니라 경영권 포기를 선언했다. 설원량 회장 사망 이후 회사를 물려받은 지 정확히 9년 만에 대한전선의 설씨 3대 58년 역사는 그렇게 마감되었다.

   
▲ 경영참여 9년 만에 경영권 포기를 선언한 설윤석 사장
우리 나라 최초로 전선제조업을 시작해 1970년대에는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들었던 대한전선. 54년 흑자신화를 쌓았던 대한전선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대한전선의 비극은 3세 경영세습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재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히 횡령 등의 혐의로 총수가 구속되어 ‘경영 공백’의 와중에서 젊은 3세 또는 4세들이 경영에 참여해 보폭을 넓히고 있는 한화그룹이나 CJ그룹 같은 경우는 대한전선을 ‘반면교사’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설원량 회장이 숨질 당시 대한전선은 매출 1조7천억대, 영업이익 9백억대로 크고 탄탄했다. 문제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경영 공백이 생겼다는 점이다. 승계구도는 어떤 것도 준비되지 않았다. 후계자 리스크에 완벽히 노출된 것이다. 설윤석 사장은 당시 23살이었다.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었다. 부인 양귀애씨가 회사를 맡기에는 경영 경험이 너무 없었다. 평생 주부로 살아온 탓이다.

오너 회장 갑작스런 사망으로 후계 리스크에 무방비

결국 선택은 전문경영인 체제였다. 설종량 회장 체제에서 2002년 대표이사로 취임했던 임종욱 사장이 경영을 맡았다. 설윤석 사장이 당시 유학의 꿈을 접고 기획전략팀 과장으로 경영 수업에 들어갔다. 양귀애씨가 회사 고문을 맡아 경영에 참여하면서 아들을 위한 후견인 역할을 했다.

매우 불안정한 체제였다. 완전한 전문경영인 체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영승계를 위한 과도기 체제도 아니었다. 이런 체제에서는 전문경영인이 마음대로 경영독주를 해도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기 어렵다. 혹은 그룹 내에 ‘이중권력 구조’가 만들어져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할 수도 있다.

   
▲ 설원량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설원량 회장 생전의 가족 사진.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설종량 회장 아래에서 ‘사업 다각화’를 펼치던 임종욱 사장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설종량 회장 당시 쌍방울과 무주리조트를 인수하고 성공한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사장에서 회장으로 올라간 임종욱 회장은 남광토건 온세텔레콤 등을 인수한 데 이어 서울 남부터미널 터도 사들였다. 2008년까지 대한전선이 인수합병에 투자한 돈만 해도 무려 2조원에 이르렀다.

전문경영인 견제장치 작동하지 않은 위험한 '오너 동거' 경영

임 회장의 독주 체제 속에서 무리한 사업 다각화 전략이었지만, 젊은 오너의 ‘동의’ 없으면 불가능한 결정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뒷날 임종욱 회장은 횡령 등 개인비리가 밝혀지고 법정에 서기도 하는데, 대한전선 쪽에서는 “임 회장의 전횡을 막지 못한 것이 대한전선의 몰락을 불렀다”고 했다. 하지만 임 회장의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성공에 도취되어 오너 가족들이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었거나 아니면 묵인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더 정확해 보인다. 정상적인 경영이라면 견제장치가 작동되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기간에 설윤석 사장은 상무를 거쳐 경영기획부문 부사장을 거치는 등 고속승진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대한전선의 무리한 인수합병은 유동성 위기로 돌아왔다. 2009년 2771억원 당기순손실을 냈다. 차입액만 2조5000억원에 이르렀다. 1년 전만 해도 700억 정도의 당기순이익을 냈는데, 곤두박질치고 만 것이다. 대한전선 54년의 흑자신화가 산산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창업주 유훈 어기고 무리하게 부동산에 손댄 대가?

   
▲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는 종이 한장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대한전선의 몰락은 창업주의 유훈을 어긴 대가인지도 모른다. 창업주 설경동 회장은 5.16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으로부터 부정축재자로 몰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적이 있다. 창업주는 후손들에게 정치에는 발을 담그지 말고, 부동산 투자 등 본업이 아닌 사업에는 투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대한전선은 54년 흑자로 구축한 현금을 부동산에 묶어놓고 말았다. 사업다각화라는 이름으로.

2010년 설윤석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섰다. ‘재계 최연소 부회장’이 그의 타이틀이었다. 과장으로 입사한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좀체 개선되지 않았다. 바닥을 모른 채로 내려앉았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본사 사옥과 자회사를 비롯해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시장에 내놓는 구조조정을 했다. 2012년 설윤석 사장은 “부회장이라는 이름이 부담스럽다”며 사장으로 스스로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1조4천억원의 부채는 남아있다. 대한전선은 영업이익만으로는 부채를 감당할 수 없는 기업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설 사장은 경영권을 포기해서라도 회사를 살리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회사를 일군 선대에 대한 마지막 도리라는 말과 함께.

채권단은 설윤석 사장 경영권 포기 이후 부채 일부를 출자전환해 자본잠식을 막고 회사를 정상화해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전선 제조업만 놓고 보면 시장점유율이 30%로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기사프린트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