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에 대한 글을 몇 달간 쭉 써오면서 아끼고 아꼈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최초의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다. 먼저 지휘자가 필요했던 이유다. 인류가 탄생하고 산업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문화를 영위하기 시작하면서 연주회장의 규모도 커지고 음악도 그에 따라 점점 발전했다. 제일 먼저 한 성부의 음악이 생겼고, 그 이후 다성 음악에서 화성(Harmony)을 가진 음악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노래방에 가면 이런 사람들 있다. 한 명이 노래를 시작하면 자기가 아는 노래라며 꼭 마이크를 들고 따라 부르는 사람 말이다. 한 술 더 떠 얼토당토않은 화음까지 넣어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음악의 발전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하나의 성부를 가진 음악이 많은 성부를 가진 음악으로 변하고, 그러한 다성음악이 점점 화성음악으로 발전했다. 하나의 악곡을 연주하는데 필요한 연주자가 많아졌고, 결국 오케스트라가 탄생했다. 많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하나의 화음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결국 그를 조율할 수 있는 한 명의 리더가 필요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지휘자다. 우리가 아는 최초의 지휘자는 장 바티스트 륄리다. 지휘만 하는 전업 지휘자가 탄생하기 전까지 보통 작곡가가 지휘를 했다. 그들의 직책은 궁정 작곡가와 궁정 악단의 리더의 역할을 겸하는 것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륄리였다. 그는 자신의 긴 지팡이로 바닥을 쿵쿵 두드려서 정확한 템포와 리듬을 요구했다. 연주자들이 자신의 스타일대로 연주하도록 리허설했다. 비록 이것이 요즘 지휘자들에게 요구되는 해석의 의미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그 전까지 앙상블을 이끌어가기 위해 작곡가들이 쳄발로를 사용했다. 륄리의 지팡이는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지휘봉이다. 그는 태양왕 루이14세의 총애를 받았다. 안타깝게도 루이14세의 쾌유를 축하하는 연회에서 그의 지팡이가 발등을 찍는 이른바 ‘산재’가 발생했는데 그로 인한 패혈증으로 결국 사망했다. 륄리 이후의 지휘자로 글룩이 있다. 그는 오페라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다. 오페라가 대본과 음악이 합일된 오늘날의 음악 드라마로 발전할 수 있게끔 노력했던 선구자였다. 그는 악단으로 하여금 오페라 내용에 따른 음악의 성격, 강약의 대비 등을 숙지시키기 위하여 악단을 반복적으로 연습시켰다. 자신도 더욱 숙련된 지휘 테크닉을 사용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연구했다. 지휘자로서 글룩의 이러한 노력은 최고의 작곡가들이었던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모두 오케스트라의 각 성부가 빈틈없이 들어맞는 정확한 리듬과 셈여림, 심지어 활 길이까지 디테일하게 요구했다. 또 단원들을 엄격하고 충분하게 연습시켰다. 물론 청력을 상실한 말년의 베토벤은 지휘를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지휘자의 역사는 독일 오페라의 기틀을 다진 베버를 거쳐 바그너와 멘델스존, 그리고 베를리오즈로 이어진다. 바그너와 멘델스존, 그리고 베를리오즈의 곡들을 들어보기만 해도 이들의 음악적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진취적이었으며 선율과 리듬의 자유로운 스타일을 추구했던 바그너는 고전적이었고 정확하며 매끈하게 정제된 음악을 추구하였던 멘델스존과 베를리오즈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를 이어 드디어 지휘만 하는 최초의 전업 지휘자가 탄생한다. 바로 한스 폰 뵐로였다. 물론 그 전에도 프랑스의 아브넥이라는 지휘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레퍼토리가 너무나도 한정되어 있었고 지휘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했기 때문에 보통 최초의 지휘자로 뵐로를 꼽는다. 그는 리스트의 제자로서 한 때 그의 사위이기도 했다. 바로 코지마 바그너가 그의 부인이었다. 바그너가 그를 지휘자로 데뷔시켰지만 바그너와 코지마의 불륜 이후 결국 이혼을 선택한 뵐로는 바그너의 반대진영이었던 브람스 쪽으로 가서 그들의 곡들을 무대에 올렸다. 뵐로는 한 연주회의 프로그램에 있어서 통일성을 부여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잡아서 베를린 필을 세계 최정상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그는 바그너와 브람스 양대진영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이해력도 풍부했으며 예술을 하나의 학문으로 생각하여 끊임없이 악보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연구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그의 영향을 받은 제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뿐 아니라 지휘에도 탁월했던 것을 보면 그의 능력을 새삼 알 수 있다. 그는 내가 맨 처음 언급했던 토스카니니와 마찬가지로 악보에 대한 충실함을 이렇게 요구했다. ‘베토벤 교향곡을 먼저 정확히 읽는 법을 배우면 해석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그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가 된 아르투로 니키쉬는 역시나 탁월한 해석력과 카리스마로 후대의 지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음반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 음반은 하나의 교향곡 전곡이 담겨 있는 최초의 음반이다. 뵐로와 니키쉬 이후 그들의 음악가로서 신념을 물려받은 훌륭한 전업 지휘자들이 마에스트로의 칭호를 이어나가고 있다. 작곡하는 지휘자로서, 원래의 전통적 궁정음악가로서 역할 또 한 번스타인이나 불레즈 등으로 인하여 아직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훌륭한 작곡가가 훌륭한 지휘자라는 것이다. 작곡가던 지휘자던 결국 음악성이 뛰어난 사람이 마에스트로 칭호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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