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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2년 6월1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2012 호암상 시상식'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참석했다. <뉴시스> |
삼성그룹이 2일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을 결정했다.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을 내놓은지 이틀 만이다. 통합회사의 이름은 삼성종합화학으로 정했는데, 그 이름에 걸맞은 화학 부문 종합회사로 거듭났다.
주목할 점은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이 삼성그룹의 건설과 화학 부문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건설과 화학 부문의 지주회사 격이 됐다. 그런데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삼성SDI가 됐다. 삼성SDI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가 확실한 곳이다.
이는 곧 삼성물산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장악력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통합 전에 삼성석유화학 최대 주주였다. 그러나 통합 삼성종합화학에서 이부진 사장의 지분은 6위로 내려갔다. 화학 부문에 대한 이부진 사장의 지배력은 예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게 된 셈이다.
흔히 이재용 부회장은 전자와 금융을, 이부진 사장은 호텔을 비롯해 건설과 화학을 승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삼성물산을 장악하면 삼성의 건설과 화학 부문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삼성물산의 주인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이재용 부회장일까 아니면 이부진 사장일까?
◆ 삼성물산, 건설과 화학 부문 지배구조 최정점에 올라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이 합병하면서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내부에서 건설과 화학 부문의 지배력을 확보하게 됐다. 삼성물산은 합병법인이 된 삼성종합화학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이 건설 부문에 이어 화학 부문의 지배구도에서도 정점을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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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실질적인 그룹 전체 지주회사 삼성에버랜드(1.5%)를 비롯해 여러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쪽은 삼성물산과 건설 부문 핵심 계열사인 삼성엔지니어링의 관계다.
삼성물산은 본래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지난해 삼성SDI가 소유했던 5.1%를 전량 사들였다. 이를 통해 6개월 만에 7.8%의 지분을 확보해 2대 주주가 됐다. 업계는 제일모직이 삼성SDI와 합병하면서 제일모직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13.1%를 삼성물산에 매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삼성물산은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20.9%를 보유하게 돼 순식간에 최대주주로 등극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앞으로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할 것으로 본다. 이미 지난달 31일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 삼성전자가 IT 부문 계열사 지배구조를 확립한 사례도 있다. 또 각각 건설 부문과 플랜트 부문으로 강점이 나뉘어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장점도 있다. 이를 통해 삼성물산 외 삼성엔지니어링·삼성중공업·삼성에버랜드에 흩어진 건설 부문을 일원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물산의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 내부에서도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은 어느 정도 수순을 거쳐 이뤄질 가능성이 짙다고 본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이번 합병을 통해 화학 부문에서도 강한 영향력이 확보하게 됐다. 삼성물산이 합병법인이 된 삼성종합화학의 최대주주가 됐기 때문이다. 삼성종합화학은 합병 후에도 여전히 삼성토탈 지분 50%를 보유하는 등 화학 부문 계열사의 종합 지주회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를 고려하면 삼성물산은 실질적인 화학 부문을 지배하는 회사로 떠오르게 된다.
삼성물산은 이번 합병 전 삼성종합화학의 지분 38.7%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그 다음으로 삼성테크윈(26.5%)·삼성SDI(10.7%)·삼성전기(10.5%) 등이 삼성종합화학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석유화학의 경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33.2%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삼성물산은 지분 27.3%로 이 사장의 뒤를 이어 2대 주주였다. 제일모직(21.4%)과 삼성전자(13.0%)도 삼성석유화학의 주요 주주였다.
합병 이후 삼성물산은 삼성종합화학의 명실상부한 최대주주가 된다. 신주 발행을 고려해도 총 지분 중 37.0%를 차지하게 된다. 이어 삼성테크윈(22.6%), 삼성SDI(9.1%), 삼성전기(9.0%), 삼성전자(5.3%)가 뒤를 잇는다. 이 사장은 4.9%로 개인 자격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지만 지분율로 보면 6위로 떨어진다.
이를 놓고 보면 삼성물산은 사실상 건설과 화학 부문의 지주회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든 누구든 삼성물산의 지배력만 확보하면 삼성그룹에서 건설과 화학 부문을 모두 장악하는 위치에 쉽게 오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이번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은 두 기업의 합병 자체보다 오히려 삼성물산을 건설과 화학 부문 지주회사로 탈바꿈해 놓았고 누구든 쉽게 삼성물산을 통해 건설과 화학 부문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 이재용 대 이부진, 삼성물산은 누구 손에
이제 관심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가운데 누가 삼성물산의 경영권을 쥘 것인가 하는 쪽으로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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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
그동안 업계는 포스트 이건희 시대에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 이부진 사장이 호텔·건설·화학,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 부문 사장이 패션·미디어를 맡게 될 것이라는 분석을 유력하게 내놓았다.
이번 합병은 얼핏 보면 그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부진 사장은 합병 전 삼성석유화학의 최대주주였으며 합병 후에도 지분 4.9%를 확보해 개인 주주로서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한다. 이를 놓고 이부진 사장이 삼성그룹의 화학 계열사를 거느릴 준비를 시작했다는 예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전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건설과 화학 부문이 이부진 사장에게 갈 것이라는 기존의 시나리오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일단 통합 삼성종합화학의 경우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을 제외하더라도 2~4대 주주가 모두 삼성전자를 최대주주로 둔 전자 부문 계열사다. 삼성전자 자체도 5.3%로 5위에 올라있다. 이를 모두 합치면 삼성전자 계열사 지분의 총량은 46.0%에 달한다. 이부진 사장은 4.9%로 간신히 6위에 턱걸이한 수준이다. 삼성종합화학에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이부진 사장이 아니라 이재용 부회장인 셈이다.
건설 화학 부문의 지주사 역할을 하게 된 삼성물산의 경우 삼성물산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오너는 이건희 회장 뿐이며 지분은 1.4%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 7.2%를 보유해 사실상 1대 주주인 삼성SDI를 통해 삼성물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삼성SDI의 최대주주가 삼성전자(20.4%)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한 2대 주주이기도 하다. 더욱 이재용 부회장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이부진 사장이 건설과 화학 부문을 승계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확실한 방안은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확보해 삼성물산 최대주주에 오르는 길이다. 이부진 사장이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을 전량 사들인다면 단번에 삼성물산을 통해 건설과 화학 부문을 모두 장악할 수 있다.
문제는 이부진 사장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다. 이부진 사장은 현재 통합 삼성종합화학 지분 4.9%와 삼성SDS 지분 3.9%와 삼성에버랜드 주식 8.4%를 보유하고 있다. 결국 삼성종합화학과 삼성SDS 지분을 활용해 삼성물산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이부진 사장이 건설과 화학 부문을 승계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은 삼성에버랜드와 삼성물산을 합병하고 건설 부문을 떼내 지배력을 얻는 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사실상 삼성그룹 자체를 분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연 이건희 회장이 이부진 사장을 위해 이 길을 선택할 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