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 파업 참가자들이 16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앞에 앉아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커다란 깃발과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노동가만 지우면 축제 현장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금융노조 총파업 현장 얘기다.
당초 예상과 달리 총파업 현장은 젊은 노조원들로 가득했다.
정확한 수치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그동안 집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젊은 직원들이 다수 거리로 나왔다는 점은 이번 총파업이 거둔 한 가지 성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16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부터 덕수궁 대한문까지 400m 되는 거리가 파업 참가자들로 가득 찼다.
노조는 2만 명이 참석할 수 있는 자리를 확보했다고 했는데 본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들어찼다. 현장에 다소 늦게 도착한 참가자들은 거리 한편에 서 있으라는 안내를 받기도 했다.
파업 참가자들을 둘러봤을 때 젊은 직원들이 많이 보였다. 목이나 손목에 두른 붉은 띠가 아니면 파업 참가자라고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이들이 풍기는 현장 분위기는 ‘투쟁’이나 ‘파업’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비장하고 무거운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삼삼오오 웃고 떠들었고 아는 얼굴이 보이면 팔을 흔들어 인사를 나눴다. 파업 현장을 기념하듯 휴대전화 카메라로 ‘인증샷’을 찍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목격됐다.
그러나 본 집회가 시작될 때는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젊은 참가자들은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도 노조 간부의 ‘투쟁’ 구호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면 힘차게 팔을 올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 금융노조 파업 참가자들이 16일 오전 10시 코리아나호텔 앞에 앉아 있다. |
IBK기업은행 노조 위원장이 격앙된 목소리로 “보수언론은 누가 진짜 ‘귀족’ 노동자인지 확인해 보자”고 외쳤을 때에는 함성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젊은 직원들은 편하게 파업현장에 참가하며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언론의 취재는 부담스러워했다. 익명을 전제로 해도 대부분이 손사래를 치며 인터뷰를 피했다. 그나마 한 참가자만이 “몰래 와서 그렇다”고 인터뷰가 곤란한 이유를 설명해 줬다.
금융노조는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투쟁사 낭독 등을 마친 뒤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용산까지 거리 행진을 이어갔다. 노조는 삼각지역에서 결의문을 낭독한 뒤 파업을 마무리했다.
이번 총파업은 젊은 직원들의 참여로 활기를 띠었지만 당초 목표대로 시민들의 공감을 크게 얻는 데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시청역 근처에 거주한다는 한 시민은 “왜 은행에서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파업의 주체가 금융노조라는 사실을 모르는 행인들도 많았다. 한 시민은 “신기하긴 한데 딱히 관심은 없다”고 말했다. 스피커를 타고 크게 울려퍼지는 음악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금융노조는 총파업에 앞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총파업의 제일 큰 이유를 “공공재로서의 금융의 역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 금융노조 파업 참가자들이 16일 오전 10시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금융노조는 이번 총파업으로 바뀌는 게 없다면 30일 다시 거리로 나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노조가 6년 만에 거리로 나서게 된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임금인상이다.
금융노조는 올해 임금과 단체협약에서 임금 인상률 등을 놓고 사측 대표기구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해 5.2%(저임금 직군은 10.4%)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반면 사측은 2.4%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노조가 공공재로서 금융의 역할이라고 강조했지만 결국 KDB산업은행의 부산이전에 반대하는 것이다.
KDB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등 윤석열 정부의 국책은행 운영 방식과 관련해 노조는 계속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금융노조 총파업에도 은행 영업점 운영에는 큰 차질이 없던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당국은 파업에도 은행업무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현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총파업이 벌어지던 서울 광화문 인근 은행 영업점 창구에는 일부 업무가 제한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긴 했으나 대체로 한산했다.
이날 금융노조 총파업에는 대략 1만3천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된다.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