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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돌 9단이 15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국이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
아무도 이세돌 9단을 비난하지 않는다.
‘세기의 대결’은 이렇게 알파고의 4대 1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세돌 9단이 “무조건 5대 0으로 이긴다. 한판이라도 진다면 그건 알파고의 승리”라며 호언장담했던 것을 돌아보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초라한 성적표다.
그러나 비난은커녕 ‘갓 세돌’ ‘우리의 영웅’ ‘멋진 남자’등과 같은 찬사가 쏟아진다.
보기 드문 광경이다. 원래 한국 사회가 패자에게 이처럼 관대한 사회였던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패자에게 이처럼 엄청난 박수와 격려가 이어졌던 경우가 전에도 있었던가.
사람들은 왜 이토록 ‘패자’ 이세돌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이 9단은 패배하자 쿨하게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졌다”고 말했다.
구글이 알파고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채 치러진 대국이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일부에서 나오자 이 9단은 “알파고에 대해 처음부터 어느 정도 정보가 있었다면 수월했겠지만 기본적으로 제 능력이 부족해서 졌다”며 ‘남탓’을 하지 않았다.
이번 대결을 통해 드러난 알파고의 실력은 한마디로 ‘괴물’ 수준이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범접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인류 대표’로 알파고와 맞선다는 점도 이 9단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부담감과 압박감을 안겨 주었다.
시작부터 모든 조건이 이세돌에게 불리했으면 불리했지, 유리한 조건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가운데 승부의 분수령이었던 3국에서도 이세돌은 완패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세계바둑계를 호령해 온 1인자로서 자존심은 물론이거니와 심각한 내상을 입었을 법도 했지만 이세돌은 흐트러짐 없이 의연했다.
그는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려서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위로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그는 먼저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한 것이다.
이 9단은 “그렇지만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한 것은 아니다”는 말로 팬들을 오히려 위로했다.
이 9단은 3국 뒤 “이제 1승이라도 올리고 싶다”고 솔직히 밝혔다. 이 말 속에 바둑계 1인자의 자존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한편생 바둑에 몸담아온 승부사 특유의 투혼과 승리에 대한 강렬한 집념만 담겨져 있었다.
이 9단은 바람대로 4국에서 ‘신의 한수’라는 묘수를 선보이며 마침내 ‘기적’ 같은 첫승을 따냈다. 알파고를 상대로 어쩌면 ‘인류의 첫승이자 마지막 승’일지도 모를 귀중한 승리를 일궈낸 낸 것이다.
이 9단의 승리에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환호했다. 감동을 넘어 눈물까지 보인 팬들도 적지 않았다. 한 바둑팬은 "지켜보는 사람이 암담할 정도였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9단의 모습에 울컥했다"고 말했다.
‘알파고의 아버지’인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데미스 허사비스가 말한 대로 ‘엄청난’ 일주일이 지나갔다.
일주일 지난 뒤 다시 우리사회를 되돌아 보면 이 9단이 보여줬던 정직과 진실, 겸손, 투혼과 같은 가치를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아름다운 패배’란 말의 뜻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대결을 통해 이 말의 참뜻을 비로소 알게 됐다. 그래서 이 9단에게 더욱 고맙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