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미래사업 관련 투자를 본격화한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은 중공업을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현대중공업그룹이 미래 중공업시장을 선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보인다.
24일 재계에서는 현대중공업지주와 한국투자공사의 1조 규모 공동 투자협약을 놓고 정 실장이 이끄는 미래위원회 활동이 투자로 본격화하는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정 실장은 지난해 말 현대중공업지주에 미래위원회를 꾸리고 직접 위원장을 맡아 이끌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미래위원회는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들의 20~30대 젊은 직원들이 모여 미래사업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내는 조직이다”며 “인공지능, 바이오, 스마트선박, 친환경연료 등 다양한 사업영역에서 신사업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현대중공업지주는 한국투자공사와 △인공지능 및 로봇 △디지털 헬스케어 △선박 자율운항 △수소연료전지 등 분야에서 선도적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기업에 인수 및 공동 지분투자를 진행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 사업들은 현대중공업그룹이 설명하는 미래위원회의 사업 아이디어 연구영역과 일치한다.
정 실장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미래를 기술에서 찾겠다는 의지를 이번 업무협약으로 본격화한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기술중심’ 의지가 나타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6월 그룹의 조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이 설립될 당시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은 “조선업의 패러다임을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권 회장이 꺼낸 ‘조선업 패러다임 전환’ 화두를 그룹 전체 차원, 중공업 전반으로 넓히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투자대상으로 지목된 사업들의 면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사업들은 모두 특정 계열사에만 한정되지 않고 여러 계열사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을 접목한 로봇기술은 현대로보틱스가 직접 수행하는 로봇사업과 연결되면서 동시에 조선계열사들의 스마트조선소 구축과 스마트선박 건조에도 필요한 역량이다.
수소연료전지는 현대오일뱅크의 정유공장에서 발생하는 부생수소를 활용하는 사업이면서 동시에 조선 계열사들이 수소연료전지추진선을 개발해 미래 무탄소선박시장을 선점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의 기술중심 투자계획에 절박함이 담겨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미 ‘글로벌 조선업계 1위’ 위상을 보유한 중공업 기업집단이다. 그러나 이런 위상의 이면에는 눈앞의 생존조차 담보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도 자리잡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대표사업인 조선업에서 이런 현실이 가장 잘 드러난다.
한국조선해양은 2020년 연결기준 매출 14조9037억 원을 냈으나 영업이익은 744억 원에 그쳤다. 조선업계에서는 1위 회사의 영업이익률이 0.5%에 그칠 정도의 ‘출혈경쟁’이 펼쳐지고 있다는 얘기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과 두산인프라코어 등 대형 경쟁자들의 인수를 잇따라 추진하는 등 규모의 경제를 갖추기 위한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동시에 전문경영인체제에서 오너경영인체제로 전환도 준비하고 있다.
정 실장은 미래 현대중공업그룹을 이끌 후계자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미래에도 글로벌 중공업을 선도할 수 있도록 규모의 경제에 기술을 덧씌우고자 하는 것이다.
정 실장이 투자에 나서고자 하는 사업들은 중공업에서는 먼 미래로 여겨진다. 하지만 모빌리티와 통신 등 다른 산업군에서는 관련 기술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중공업이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변화하는 시기를 앞당기고 현대중공업그룹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를 선도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정 실장은 숨기지 않았다.
정 실장은 24일 서울 종로구 현대빌딩에서 열린 현대중공업지주와 한국투자공사의 공동 투자협약 체결식에서 “이번 협약이 현대중공업그룹의 신사업을 먼 미래가 아닌 현실로 만드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