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박서원은 두산 전무다. 두산그룹의 광고대행사인 오리콤 크리에이티브총괄 부사장으로 지내다가 두산 유통사업부문 면세점 전략담당 전무로 선임되면서 두산그룹의 새 성장동력을 이끌고 있다. 1979년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단국대학교 경영학과를 중퇴한 뒤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배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해 학사경고를 받았고 스스로에게 맞는 전공을 찾기 위해 학과를 6번이나 바꿨다. 군복무를 마치고 디자인에 흥미를 느껴 산업디자인학과로 전공을 바꿨다가 그 분야에서 더욱 전문적인 학교를 찾아 뉴욕 비주얼아트스쿨로 옮겨 디자인 공부를 했다. 광고업에 흥미가 있는 동기 4명과 함께 빅앤트를 세웠다. 반전 포스터 ‘뿌린대로 거두리라’로 세계적 광고제에서 상을 휩쓸면서 광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박서원은 광고뿐 아니라 브랜드컨설팅과 패키지 디자인, 공연연출 등 다양한 크리에이티브 작업을 진행했다. 두산그룹 지주사 격인 두산의 전무로서 유통전략을 담당하면서 두산이 새로 진출한 면세점사업과 두산타워 쇼핑몰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오리콤 크리에이티브총괄 부사장, 광고회사 빅앤트인터내셔널 대표도 함께 맡고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 분방하고 파격적 행보 등으로 잘 알려졌다. ◆ 경영활동의 공과 △면세점에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 유치 추진 2017년 7월 박서원은 방한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과 만나 세포라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세포라는 헤네시그룹의 화장품 편집숍이다. 에르메스와 디올, 프라다, 톰포드 등 명품 화장품들을 유통하고 있다. 이를 놓고 박서원이 면세점시장의 흐름과 수요를 감안했을 때 패션이 아닌 코스메틱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니냐는 풀이가 나왔다.
두산은 2015년 박서원을 두산 면세점사업부문 유통전략담당 전무에 선임했다. 두산은 당시 “면세점사업은 유통과 마케팅이 중요하기 때문에 광고회사 임원인 박 전무가 적임자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박서원은 해외 유명브랜드 본사와 직접 연락하고 광고를 제작하는 등 면세점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두타면세점은 명품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명품브랜드를 유치하려고 비워뒀던 자리를 정리하면서 2017년 개장 1년 만에 매장크기를 9개 층에서 7개 층으로 줄였다. 전체 800여 개 브랜드 가운데 70여 개 브랜드가 빠져나기도 했다. 두타면세점은 2017년 4월 영업종료 시간을 자정에서 오후 11시로 바꿨다. 2016년 12월 오후 11시~새벽 2시로 천차만별이었던 영업종료 시간을 자정으로 일원화한 지 4달여 만이다. △‘바른생각’ 콘돔사업 2014년 5월 콘돔사업을 론칭해 화제를 낳았다. 사람들이 콘돔을 떠올릴 때 부끄러운 생각이 아닌 바른생각을 해야한다는 취지로 제품명을 '바른생각'으로 지었다. 콘돔사용을 늘려 미혼모를 줄이겠다는 취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쉬쉬하며 콘돔을 구매하기 어려워하는 분위기를 깨고 청소년들도 콘돔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박서원은 "콘돔은 섹스를 강요하는 제품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장치”라며 “한국여성이 콘돔으로 스스로를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5년 말에는 아동보육시설 선덕원과 정기 후원협약을 맺었고 콘돔사업 수익금 일부로 청소년용 성교육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다. 이는 25쌍의 가족·연인 등이 콘돔상자를 함께 열어볼 때 나타나는 반응을 모은 동영상이다. 300만 뷰를 기록해 국내 성교육 콘텐츠 중 가장 많이 시청한 동영상이 됐다. △소통경영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사람들과 소통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박용만 회장처럼 트위터와 같은 SNS활동을 활발히 한다. 페이스북에 박 회장의 아이스버킷 챌린지 참여영상을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5년 10월 31일에는 두산베어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우승 트로피 옆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오리콤 광고사업 두산그룹 광고계열사 오리콤이 2014년 실적부진에 빠지면서 박서원이 구원투수로 크리에이티브총괄 부사장 자리에 영입됐다. 오리콤은 보그(VOGUE), 지큐(GQ), 더블유(W) 등 글로벌 패션 미디어 등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고 박서원이 대표인 빅앤트는 사회적 비즈니스와 브랜딩, 디자인 컨설팅에 특화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리콤은 2015년 7월 한화S&C 등이 보유한 한화그룹 광고계열사 ‘한컴’의 지분 100%를 240억 원에 인수했는데 이를 통해 오리콤은 국내 5~6위 규모 광고대행사로 거듭나게 됐다. 2014년 기준 오리콤은 광고물량 기준으로 8위, 한컴은 9위였다. △광고인 박서원 박서원은 2015년 “아버지의 후광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며 두산그룹과 거리를 두고 광고인으로 활동해 왔다. 박서원은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츠(SVA)를 졸업한 뒤 2006년 친구들과 함께 '좋아하는 일이나 실컷 해보자'며 광고회사 빅앤트인터내셔널(빅앤트)을 차렸다. 그는 2009년 반전 포스터 ‘뿌린 대로 거두리라’로 뉴욕 광고제 옥외광고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반전포스터로 박서원은 한국인 최초 세계 5대 광고제 최고상 수상자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면세점사업을 통해 경영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다. 광고사업으로 보인 역량에 더해 면세점사업까지 안정적으로 일궈낸다면 경영능력을 확실히 검증받게 되는 셈이다. 박서원은 2015년 말 두산그룹이 면세점사업에 진출하면서 ‘박용만의 후계자’ 로 거명됐다. 면세점사업을 넘어 두산그룹 경영전면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당시 면세점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지만 두타면세점이 사드보복의 여파 등에 따른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박서원은 경영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박서원은 회사의 최대 차별점으로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 올빼미 영업을 내세웠지만 2016년 영업손실 300억 원을 봐 업계에서 가장 저조한 실적을 냈다. 이에 따라 영업전략을 수정해서 폐점시간을 오후 11시로 앞당기고 화장품 품목을 강화하는 것으로 전략을 변경했다. 박서원은 프랑스를 방문해 샤넬과 루이비통, 펜디, 지방시 등 해외 유명브랜드 본사를 방문해 경영진과 면담하며 경영현안을 적극적으로 챙기고 있다. 면세점사업의 성공 열쇠로 꼽히는 명품관을 유치하는 데 직접 나선 것이다. 두타면세점은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 3대 명품 브랜드의 유치에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다만 앞으로 명품화장품이 입점하는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 유치에 성공할 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 평가 박서원은 재벌 오너일가 가운데 이질적 존재로 꼽힌다. 일반적인 오너 후계자들과 같은 경영수업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박용만의 아들’이 아닌 ‘광고인 박서원’으로서 독자행보를 걸었다. 다른 재벌가 아들들 같은 '반듯한' 후계자는 아니었던 셈이다. 미국 유학 시절 경영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사회학, 심리학 등으로 매년 전공을 바꾸며 적성을 찾기 위해 방황하기도 했으나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츠(SVA)에 입학하며 디자인과 광고분야에 눈을 떴다. 놀기 좋아하는 학생이었지만 디자인에 빠져들어 열정과 근성을 보여주며 학교에서 인정받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광고통’으로 두산그룹과 거리를 두고 광고인으로 주로 활동해 왔다. 그러나 두산그룹이 사업구조를 개편하며 그룹 관계사로 소속을 옮겨 입지가 강화된 것으로 평가됐다. 젊은 감각으로 SNS소통에도 적극적이다. 박서원은 2014년 10월 SNS를 통해 일본산 콘돔을 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일본의 콘돔제조회사 오카모토가 일본군 위안소에 콘돔을 공급했었기 때문이다. 박서원은 페이스북에 오카모토를 겨냥해 “ㅇ사가 그랬구나...열받네...ㅇ사는 반드시 넘는다”는 말을 남겼다. 2016년 홍콩의 애드리언 청(Adrian Cheng) 뉴월드그룹 회사 부회장을 '언제봐도 반가운 친구'라며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민머리와 팔뚝에 새긴 다양한 문신 등 튀는 외모로 주목을 받는다. 그의 패션은 일반적인 공식에서 벗어나 있는 걸로 유명하다. 2016년 4월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패션행사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러 컨퍼런스’에서 빈티지 재킷에 검정색 배기바지와 나이키 러닝화를 신어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성격을 표현했다. 재벌가 4세답지 않은 파격적이면서도 소탈한 행보로 많은 이야깃거리도 몰고 다닌다. 직원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일반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도 거리낌없이 참석한다. ‘지스타2015’가 한창이던 2015년 11월12일 10여 명의 일행과 함께 행사장인 벡스코에 ‘재미삼아' 구경 나서기도 했다. 튀는 외모에 카키색 롱야상을 입어 쉽게 눈길을 끌었지만 많은 관람객들은 그가 누군지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2015년 두산베어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자리에 아버지 박용만 회장과 함께 했다. 빗줄기가 굵어져 관객들이 자리를 떠나던 3차전에서 박 회장과 박 전무가 한 개의 우산을 나란히 쓰고 앉아있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박용만 회장은 2013년 9월 서울대 공학관에서 열린 두산그룹 채용설명회에 직접 연사로 나서서 “아들(박서원)이 나보다 먼저 대학에 강연자로 나선다고 자랑하길래 ‘헐’이라고 대답해 줬다”며 “나보다 더 많은 청중들을 끌어모을 자신이 있다고 해 ‘헐 투(two)’라고 응수했다”고 농담을 던졌다. 여행과 운동, 요리를 즐긴다.
△면세점 비리사건 2017년 7월12일 검찰은 두산면세점 선정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의혹으로 이 사건을 특수1부에 배정했다. 감사원이 2017년 7월11일 발표한 ‘면세점 사업자 선정실태’ 감사결과를 살펴보면 관세청은 2015년 1, 2차 면세점 선정과정에서 두산과 한화에게 사업권을 주고 롯데는 떨어뜨리고자 각종 편법을 구사했다. 관세청은 롯데가 우위인 기준에서는 점수의 변별력을 없앴고 롯데에게 불리한 실적자료를 제출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두산이 롯데를 꺾고 면세점사업권을 거머쥔 데는 이런 배경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됐다. △서울시 브랜드 선정 비판 2015년에 서울시 브랜드 선정을 비판하는 글을 남겨 주목을 받았다. 박서원은 ‘아이서울유’ 등 서울시 브랜드 최종 후보를 두고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지만 서울을 이렇게 브랜딩해도 되는지”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많은 의견수렴과 분석이 중요하지만 데이터를 정리하고 표현하는 마지막은 업을 이끄는 최고의 전문집단 혹은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많은 비판을 방어하기보다 폭넓게 수용해 더 좋은 결과물로 만들어 주길 서울시민으로서, 디자이너로서, 광고인으로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 글이 확산되며 논란이 커지자 글을 내렸다. △동화약품 광고 수주 박서원은 평소 “회장 아들이라 도움 받았다는 말이 듣기 싫다”고 말했다. 하지만 빅앤트는 두산그룹 광고계열사 오리콤과 공동으로 동화약품의 광고대행 업무를 4년 동안 진행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자연히 두산그룹의 간접지원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빅앤트는 2014년 1월 두산그룹 계열사로 편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리콤 관계자는 박서원과 박용만 회장의 관계 때문에 발생한 거래가 아니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2006년 뉴욕 비주얼아트스쿨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 4명과 빅앤트인터내셔널을 세웠다. 2014년 10월 두산그룹 광고계열사 오리콤의 크리에이티브총괄(CCO)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빅앤트는 원래 광고부문과 비광고부문을 두고 있었으나 이때부터 디자인, 브랜드컨설팅, 사회공헌 사업 등 비광고부문 사업만 유지하고 있다. 2015년 11월 정기 임원인사에서 전무로 선임돼 두산 사업부문의 유통전략담당 전무를 겸직하고 있다. ◆ 학력 상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에 입학했다가 중퇴했다. 2005년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츠(SVA)에 입학해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고 2010년 졸업했다. ◆ 가족관계 증조부인 박승직씨는 1920년대 공산품으로서 제작된 한국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을 만들고 주식회사 박승직상점을 설립한 두산 창업주다.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이 할아버지고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아버지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첫째 큰아버지,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둘째 큰아버지,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이 셋째 큰아버지,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이 넷째 큰아버지다.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이 작은아버지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아들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사촌형이고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부장이 동생이다. 박 부장은 2014년 6월 결혼했다. ◆ 상훈 2009년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옥외 반전(反戰) 포스터로 5대 광고제(원쇼, 클리오, 칸, D&AD, 뉴욕페스티벌)에서 모두 수상했다. 2010년 원쇼 옥외부문 금상을 받았고 2011년에는 원쇼 옥외부문 메리트상을 받았다.
2011년 빅앤트를 경영하는 이야기를 담은 '생각하는 미친놈'(센추리원)을 출간했다. ◆ 어록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페이스북 광고가 인기였다면 최근 1년간은 인스타그램 광고가 역전했다. 이제 광고는 정보기술(IT), 미디어기술을 결합한 마케팅이 돼 가고 있다.” (2017/8/17,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2017 부산국제광고제 제작물은 세계의 최신 크리에이티브 트렌드를 반영해 심미성과 활용성을 갖춘 우수한 디자인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2017/4/18, 부산국제광고제를 통해) “최근 면세점의 새벽영업을 줄인 것은 기존에 이원화된 영업시간을 조정한 것일 뿐이다.” “영업이 어려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두타면세점을 찾는) 관광객은 줄어들지 않았다.” “자세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매출도 늘고 있다.” (2016/12/02, 동대문 두타면세점에서 기자와 만나서)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자신의 작품과 재능을 표출할 수 있도록 시각, 조형, 공간, 음악, 춤 등 장르 구분없이 두타 구석구석을 오픈하고 지원한다.” (2016/9/12, 인스타그램에서) “좋아하는 일을 찾는 순간 사람이 달라졌다. 옛날에 논 것처럼 공부하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과제물이 포스터 1장이면 100장을 만들고 100쪽짜리 책 1권이면 200쪽 책 3권을 제출했다. 교수들이 이렇게 독한 학생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때 별명이 ‘미친 놈’이었다. 시행착오 없이 한 번에 원하는 길을 만나지 못했어도 방황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2014/11/03,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가족일이라면 늘 만사를 제쳐놓고 도와왔다.” “이번에도 회사 측에서 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제의한 것이기 때문에 기쁘게 받아들였다.” “설립한 회사를 돈을 받고 판다는 생각이 탐탁지 않았다.” “오리콤에서 CCO 영입을 준비하던 터라 가족 일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같이 일하기로 했다.” “낚싯줄에 고기를 낚기 위해 거는 미끼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 “앞으로 출근은 오리콤, 퇴근은 빅앤트에서 하게 될 텐데 잠을 줄여서라도 맡은 역할들을 다 하겠다.” (2014/10/01, 두산 광고계열사 오리콤에 부사장으로 선임된 뒤 입장을 밝히며) “콘돔 사업이니 오해받을 수 있지만 아버지는 제가 하는 일은 모두 믿어주신다. 국내 낙태여성은 35만 명이나 된다. 콘돔 보편화 사업으로 낙태여성을 1만 명만 줄여도 뜻 깊은 일이다. 콘돔사업 수익금은 청소년용 성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쓸 것이다. 나머지는 기부하겠다. 기부 대상과 방식은 고민하고 있다.” “광고하다보면 답답한 일이 많다. 미국에서 살다온 직원이 묻더라. 외국에선 듀렉스 등 콘돔 광고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왜 우리 회사엔 콘돔 광고가 들어오지 않냐고. 국내에서 콘돔 광고는 암묵적으로 금기시한다. 지하철에 콘돔 광고했다가 시민 항의 탓에 5시간 만에 내린 적도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콘돔’을 검색하면 성인인증을 받아야 한다. 청소년에게 기본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다. 콘돔은 섹스를 강요하는 제품이 아니다. 나를 보호하는 장치다.” “빅앤트가 광고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광고회사만은 아니다. 창조회사다. 컨설팅도 하고 브랜딩 작업도 하고 다양하게 하고 싶다. 최근 여러 곳에서 재능을 기부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좋은 취지이지만 단발성에 그친다. 다양한 일을 연속성있게 하고 싶다. 여전히 동화약품 광고는 맡고 있고 일부 회사의 식품 브랜드 사업 등도 진행하고 있다.” (2014/06/05,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빅앤트는 기본적으로 익순한 관행을 거부한다. 많이 한 것, 누구나 하는 거, 오래된 것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것." “권위나 위엄 같은 것이 나와는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게 사장실을 멋지게 차려놓는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서는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통념을 깼다.” (2011년 출간한 '생각하는 미친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