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는 1944년 12월4일 강원도 동해의 유복한 정치가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중 미륭건설을 창업해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김준기는 1970년대 중동건설 경기 붐을 타고 사업을 키워 창업 10년 만에 30대 그룹에 진입했다. 건설업에서 벌어들인 ‘오일달러’로 한국자동차보험을 인수하고 보험과 전자, 제철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1990년대 들어서 금융분야의 동부화재 경영을 정상화하고 국민투자금융을 동부증권으로 전환해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기반을 다졌다. 2000년대 들어 제철사업, 비메모리 반도체사업, 합금철사업에도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부그룹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가족관계 2대째 국회의원을 배출한 명문 정치가문 출신이다. 부친은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으로 1954년 제3대 민의원을 시작으로 7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국회 상공위원장, 공화당 원내총무, 국회부의장을 두루 지내는 등 활발한 의정 활동으로 이름을 알렸고 2006년 별세했다. 김준기는 어머니 김숙자씨와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 사이에서 태어난 8남매 가운데 둘째이자 장남이다. 누나 김명자씨는 국내 최초의 치약회사인 동아특산약화학 임형복 회장의 차남 임주웅 전 동부생명 사장과 결혼했다. 큰 동생인 김택기씨는 1990년대 동부화재 사장을 지내다 정계에 진출해 2000년 4월 16대 민주당 의원(강원 태백 정선)으로 당선됐다. 둘째 남동생 김무기씨는 동부증권 부사장을 지냈다. 여동생 김명희씨는 여성의 전화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김준기는 김상준 전 삼양염업 회장의 차녀인 김정희씨와 결혼했다. 부인 김정희씨는 연세대 기악과 출신으로 중매결혼해 김준기와 사이에 1남1녀를 두었다. 장남 김남호 동부금융연구소 부장은 1975년 생으로 미국 워싱턴주립대 대학원에서 MBA를 마친 뒤 동부제철 부장으로 일하다가 2013년 동부팜한농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동부금융연구소 금융전략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재직하고 있다. 김 부장은 아직 본격적으로 경영에는 나서고 있지 않지만 지분 가치 및 승계율은 50%를 넘은 상태다. 그는 동부화재와 동부, 동부팜한농의 최대주주다. 며느리 차원영씨는 1979년 생으로 차경섭 차병원그룹 이사장의 손녀이자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의 장녀다. 장녀 김주원씨는 1997년 9월 당시 해동화재 김동만 회장의 손자인 김주한씨와 결혼한 뒤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 학력 서울 경기 중고등학교(60회)를 졸업했다. 광복한 뒤 청년운동을 펼쳤던 숙부 김진팔씨가 경기고 27회, 아들 김남호 부장이 90회 졸업생으로 3대째 경기고와 인연이 깊다. 이장무 전 서울대 총장,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최경원 전 법무부 장관, 손욱 전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등이 경기고 동기동창들로 알려졌다. 고려대 경제학과 67학번이다. 부인 김정희싸의 조부 김연수씨는 김성수 고려대 설립자의 동생이다. ◆ 경력 군복무를 마친 뒤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하고 있던 1969년 1월 자본금 2500만 원으로 직원 3명과 함께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설립했다. 1971년 여객 운송업체인 동부고속운수를 설립하고 1972년에 동부관광과 동부상호신용금고를 각각 설립했다. 1970년대 해외건설공사에 진출하고 1975년 4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해군기지 건설공사를 4500만 달러에 수주했다. 1970년대 ‘중동붐’을 타고 건설업에서 급성장해 도급순위 10위 안에 진입했다. 1980년 중동에서 철수할 때까지 5년간 총 20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일달러’를 종자돈으로 사업부문을 확대했다. 1976년 삼척산업을 인수하고 1979년 대영실업과 부산운수, 1979년 한미면업을 각각 동부고속과 합병했다. 1980년 한국자동차보험을 인수하면서 재계 전면에 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2년 국민투자금융 설립하고 1988년 동부투자금융으로 상호를 변경했다가 1991년 7월 동부증권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1982년 장영자 사기사건에 연루돼 자금난에 시달리던 일신제강을 1984년 인수해 현재 동부제철로 키웠다. 1986년 울산 석유화학을 인수해 동부석유화학으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1989년 동부애트나 생명보험(1995년 동부생명보험으로 변경), 동부창업투자, 동부엔지니어링을 각각 설립했다. 1990년대 들어 창업 20여 년 만에 20대 기업에 진입했다. 1997년 설립한 동부전자(현 동부하이텍)를 발판으로 2000년대 들어서 반도체사업에 뛰어들면서 금융, 반도체, 바이오산업 등으로 성장동력을 확장시켰다. 2008년 말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유동성 위기와 철강 등 업황 악화를 이기지 못하고 구조조정을 혹독하게 치러나갔다. 2013년 기준 재계 순위 17위, 31개 계열사를 거느렸으나 2013년 후반부터 재무건전성 악화로 위기설이 퍼졌다.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2013년까지만 해도 제조부문 계열사가 55개에 이르렀지만 계열사를 매각하면서 13개로 줄었다. 2015년 4월 동부메탈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그는 200억 원에 이르는 사재출연으로 동부메탈의 워크아웃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 유동성 위기를 겪는 동부팜한농을 매각했다. 그는 비금융계열사 가운데 동부대우전자 대표이사만 유지하게 됐다. 동부는 동부화재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계열사와 지주사인 동부를 중심으로 하는 IT, 전자부문 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2015년 3월 비금융 계열사들의 지주회사 역할을 해온 동부CNI의 사명을 동부로 변경했다. 이는 동부그룹의 지배구조를 김남호 부장→동부CNI→동부그룹 비금융 계열사 순으로 수직 계열화해 김 부장의 경영체제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됐다. 동부그룹의 재계 순위는 2015년 20위에서 2016년 34위로 낮아졌다. 동부그룹은 현재 동부, 동부하이텍, 동부대우전자, 동부라이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 사건/사고 2014년 4월25일 921억 원의 동부제철 신주인수권부사채(BW) 만기를 앞두고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다. 김준기가 동부화재 지분(약 7%)과 계열사 주식 일부, 시가 30억 원짜리 한남동 자택을 담보로 내놓으면서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으로부터 1260억 원을 수혈받아 위기를 넘겼다. 동부그룹은 산업은행과 마찰을 빚었던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의 패키지 매각방식도 위임했다. 이에 앞서 2013년 말 재무건전성 관련 위기설이 돌면서 동부그룹은 동부하이텍, 동부메탈, 동부제철 인천공장 및 당진항만 등 3조 원에 이르는 자산을 매물로 내놓았다. 2013년 기준 재계순위 17위에 올라있던 동부그룹의 자산은 17조1천억 원 규모였다. 2014년 3월 동부그룹이 동부제철과 동부건설의 총 700억 원 규모 유상증자 참여를 직원들에게 강요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동부그룹은 동부건설, 동부엔지니어링 등 계열사 직원들에게 직급별로 증자 참여 액수를 할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준기는 당시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았다. 2014년 5월 동부증권이 유진투자증권을 거쳐 동부제철과 동부CNI, 동부건설 등 동부그룹 계열사들이 발행한 회사채를 규정보다 많이 인수한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의해 적발됐다. 2015년 5월 동부자동차보험손해사정에 근무하는 김모 부장은 동부제철과 동부건설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가 주식가치가 떨어지자 김준기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1억100원을 보상하라는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김 부장 측은 회사가 유상증자 참여를 강요하고 참여를 하지 않으면 부당하게 대기발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계열사인 동부건설 자사주와 동부월드 주식을 헐값에 사들여 회사에 수백억 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2009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 받았다. 2000년 12월 동부건설 자사주 763만주를 매도한 뒤 이를 다시 헐값에 매입하고 2003년 6월 동부월드의 주식 101만주를 주당 1원에 매입한 혐의를 받았다. 확정판결이 내려진 이듬해인 2010년 8월15일 광복절 대통령령에 의해 대거 특별사면 된 경제인 명단에 포함됐다. 2015년 말 재미교포 투자자 이모씨가 김준기와 고원종 동부증권 대표 등 임원 4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김준기와 고 대표 등이 동부증권 돈 약 700억 원을 유용해 동부대우전자 인수에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고발인 이모씨는 동부대우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사모투자펀드의 투자자로 전해졌다. 이모씨는 김준기와 고 대표가 동부증권 회삿돈 700억 원을 부당하게 유용해 일부 재무적 투자자에 자금을 지원해 위장 인수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고발인 조사를 마쳤고 조만간 피고발인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동부그룹 측은 고발인 이모씨가 사실무근의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 상훈 수출의 날 은탑산업훈장, 제1회 건설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08년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경영학회가 수여하는 제21회 경영자대상을 수상했다. ◆ 어록 “지난 반세기 동안 땀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다.” (2015/01, 신년사에서) “구조조정을 계기로 이제부터 우리는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내실을 강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가야 한다.” (2014/01/02, 신년하례식에서) “전자산업에서 일본 중국과 경쟁하려면 최소한 종합전자회사가 대여섯 개는 돼야 한다는 생각인데, 지금 한국에 두 개밖에 없다. 대우전자가 매물로 나왔을 때 한국의 전자산업을 주도하는 종합전자회사가 더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인수를 결심하게 됐다.” (2013/07/01, 동부대우전자 광주공장에서 임직원들과 가진 첫 간담회에서) “남의 것을 잘 모방해서 더 낫게 만들면 그것이 더 위대한 것이다. 윗사람들부터 솔선수범해서 벤치마킹을 열심히 해야 한다.” (2013/01/18, 경기도 광주 곤지암 동부그룹 인재개발원 신년 임원워크숍 특강에서) “우리 사회의 탐욕적 이기주의가 안타깝다. 이를 극복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2013/05/29, 강원도 강릉 명주군 왕릉에서 열린 강릉 김씨 문중 행사에서) ◆ 평가 동부그룹은 다른 국내 그룹들에 비해 후발주자에 속한다. 국내 10대 그룹 대부분 1930∼1940년대 출범한 것과 달리 동부는 이보다 한 세대가량 늦게 출발했다. 대학시절 미국을 시찰하고 돌아와 낙후된 국가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야심 찬 포부가 현 동부그룹을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경제적 어려움없이 자랐지만 도전정신이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도전정신을 기반으로 이미 선두업체들이 이끌고 있는 산업에 후발주자로 여러 번 뛰어들었다. 그는 기업가라면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높이고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 국가와 기업의 미래를 굳건히 하기 위해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룹에서 김준기에 대한 평가는 일밖에 모르는 ‘워커홀릭’이다. 끈기와 승부근성 또한 강해 결론이 날 때까지 임직원과 마라톤회의를 여는 일이 잦다. 결정은 신중하게 하지만 한번 결정하면 밀어부치는 불도저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 재벌 오너 가운데 드물게 경기고 출신으로 독서가 취미일 정도로 학습욕구도 강하다. 아남반도체 인수 당시 반도체 관련 모든 서적을 탐독하고 인수팀에게 내용을 강의했다. 자수성가한 오너로서 소탈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임직원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고 이메일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백화점이나 시장에서도 스스럼없이 임직원과 식사하고 좋아하는 음식도 고등어조림, 냉면 등 서민적 음식을 즐긴다. 인사스타일 면에서 순혈과 수혈을 따지지 않는 ‘출신불문 경영론’을 고수한다. 동부그룹 계열사 CEO들은 외부에서 영입된 경우가 유독 많다. 김준기가 외부기업 출신 인재를 가리지 않고 등용한다는 얘기다. 2006년 전체 임원 중 외부인사가 60%에 이르렀고 삼성 출신이 55%를 차지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그룹 역사가 짧았던 만큼 확장한 영역에서 내부사업을 이끌 마땅한 인재가 없을 경우 외부에서 인재를 수혈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부그룹의 후계구도는 확고한 편이다. 김준기는 외아들인 김남호 부장에게 그룹 계열사 지분을 상당 부분 넘겼다. 2001년부터 시스템경영과 자율경영을 강조해 온 것도 승계 이후를 대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후계자의 경영능력과 무관하게 그룹이 시스템적으로 움직이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2013년 하반기 동부 위기설이 나돌면서 구조조정 압력을 강하게 받았다. 이 과정에서 임직원들에게 유상증자 참여를 강요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14년 4월 성추문 및 불법 정치자금 수수 문제로 도덕성 시비에 휘말렸던 최연희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건설 디벨로퍼 및 농업 바이오 분야 회장으로 임명해 그 배경에 논란이 일었다. 최 의원과 강원도 동해 동향 출신으로 북평중 동기 동창으로 알려져 있다. 형법을 전공한 검사 출신 정치인 최 회장이 건설이나 농업 분야와 큰 연관성이나 전문성이 없는 만큼 정실에 따른 인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2013년 말 동부하이텍 매각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반도체사업에 대한 김준기의 집념이 그 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1997년 현 동부하이텍의 전신인 동부전자를 세우고 2002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는 등 2조 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룹을 살리기 위해 반도체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상태다. 그러나 매각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2015년 동부하이텍의 당기순이익은 창사 이래 첫 흑자를 기록했다. 뚝심의 리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려고 했을 때 회사 임원들이 이에 반대했지만 김준기는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반도체사업에 진출해야 한다며 아남반도체를 인수했다. 반도체사업 계열사인 동부하이텍은 2015년 창사 이래 사상 최대 매출과 순이익을 냈다. 이를 두고 업계는 김준기의 오랜 노력이 뒤늦게 빛을 발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준기는 사업을 시작할 때 10년 후를 내다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어떤 사업이든 성공하려면 많은 돈과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 기간 동안 기업가 스스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 기타 김준기의 형제들은 정계와 재계, 학계, 법조계를 넘나드는 화려한 혼맥과 인맥을 자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