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카피캣(모방자)이 아닌 사람은 없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말이다.

모방은 정용진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대표한다. 정용진 부회장은 신사업의 아이콘, 트렌드 세터 등 대중에게 매우 세련된 이미지로 각인돼 있지만 이 세련됨은 바로 ‘세련된 것의 모방’에서 나온다.

사업에서 모방은 혁신과 창조의 어머니로도 불린다. 

정용진 부회장의 전략은 과연 신세계그룹에서 어떤 효과를 내고 있을까? 그리고 신세계그룹을 어디로 가고 있을까?

◆ 이마트, 모방을 통해 한국 오프라인 유통의 한 획을 그어

정용진 부회장의 모방전략 가운데 가장 빛을 본 것이 바로 이마트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를 두고 “처음 이마트를 구상할 때 일본과 미국의 마트를 조합해서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마트의 세부 사업들을 보면 이런 점은 더욱 뚜렷해진다. 

이마트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자체브랜드(PB)인 노브랜드는 캐나다의 대형 유통업체 로블로의 ‘노네임’을 벤치마킹해 만들어졌다.

정용진 부회장은 유통업에서 혁신을 이야기할 때 로블로의 사례를 즐겨 인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블로가 노네임 전문매장 ‘노프릴’을 만든 것처럼 이마트 역시 노브랜드 전문매장을 열기도 했다.

노브랜드는 국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현재 이마트 전문점 매출 가운데 약 70%를 노브랜드 매출이 차지하고 있다.

물론 정용진 부회장이 야심차게 모방을 통해 시작한 신사업 가운데 잘 안 된 것들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일본의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삐에로쇼핑’이다. 

삐에로쇼핑을 보면 정용진 부회장 전략의 또 다른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유연성이다.

삐에로쇼핑은 노브랜드, 스타필드, 트레이더스 등과 함께 정용진표 브랜드의 대표적 사례다. 그만큼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사업 추진에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삐에로쇼핑은 2020년 5월31일 대구점 폐점을 끝으로 불과 2년 만에 사업을 중단하고 말았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실패보다 유연성이다. 삐에로쇼핑사업을 접은 인물은 전문경영인인 강희석 이마트 대표이사 사장이다.

오너가 직접 추진했고 그것도 시작한 지 2년 정도밖에 안 된 사업을 전문경영인이 철수를 결정했다는 것은 정용진 부회장의 유연성을 보여준다. 해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사업을 국내에 적용해 보되 잘 안됐을 때는 고집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용진표 모방을 통해 이마트는 국내 굴지의 유통기업으로 우뚝 서는 데 성공했다. 

이마트가 신세계로부터 물적분할된 다음 해인 2012년 이마트는 매출 12조6700억 원을 냈다. 그리고 한 해도 매출이 감소하는 일 없이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며 2019년에는 매출을 19조600억 원까지 늘어나는 데 성공했다. 8년 만에 매출이 약 50% 증가한 셈이다.

◆ 쇼핑을 놀이로, 정용진표 모방의 새 지평 스타필드와 화성 국제테마파크

이마트는 정용진표 모방의 성공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용진표 모방은 지금 어디로 나아가고 있을까?

신세계 스타필드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스타필드의 외관과 상표 등을 보면 영국의 쇼핑몰 ‘웨스트필드’를 벤치마킹했다는 것이 뚜렷이 드러난다. 신세계 역시 스타필드를 두고 “영국의 웨스트필드 쇼핑몰과 두바이몰 등 세계 37개 쇼핑몰의 장점을 벤치마킹했다”고 설명했다.

정용진이 쇼핑몰을 구상하며 ‘스타필드’라는 형태를 떠올린 것은 전통적 유통업의 위기와 관련이 깊다.

이마트를 포함해 오프라인 유통사업은 ‘지는 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코로나19의 등장으로 전통 유통업의 위기는 더 빨라지고 있다.

이마트 역시 전통적 오프라인 영업에서 벗어나 SSG닷컴 등을 통해 온라인 유통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유통은 오프라인 유통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오프라인 유통 자체를 살릴 수는 없다. 

스타필드는 오프라인 유통을 살리는 길과 관련된 정용진 부회장의 답이다. 스타필드를 통해 정용진 부회장은 오프라인 유통이 나아갈 길은 쇼핑을 놀이 혹은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의 스타필드 전략은 스타벅스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다.

스타벅스는 수많은 커피 전문점들이 떠올랐다가 지는 가운데 오히려 굉장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브랜드다. 

스타벅스의 성장전략은 커피에 더해 ‘경험’을 판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출신의 경영컨설턴트 조셉 미첼리의 ‘스타벅스 경험 마케팅’이라는 책에 따르면 ‘기쁘게 하고 놀라게 하라’는 것이 바로 스타벅스의 경영원칙이다. 고객이 커피를 마시러 오는 게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경험을 하러 스타벅스에 오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스타벅스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게 바로 신세계다. 정용진 부회장은 최근 스타벅스 유튜브에 출연해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콜드브루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성 국제테마파크사업은 스타벅스와 스타필드가 보여줬던 쇼핑과 경험의 결합을 완성하기 위해 정용진 부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화성 국제테마파크는 단순한 놀이공원이 아니라 128만 평, 여의도의 1.4배에 이르는 커다란 부지에 테마파크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신세계는 여기에 무려 5조 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투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화성 국제테마파크를 전문쇼핑몰, 리조트 등이 모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화성 국제테마파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스타필드가 되는 셈이다.

화성 국제테마파크는 오프라인 유통업을 놀이문화로 전환하는 거대한 실험의 최종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스타필드로 실험해왔던 꿈을 화성 국제테마파크를 통해 완성하려는 것이다.

◆ 이마트 디지털 전환 숙원 걸린 SSG닷컴, 모방만으로 승부하기엔 너무 늦었다

전통적 유통업은 사회 변화에 따라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또한 코로나19는 그 변화를 더욱 부추겼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의 전통 유통업의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돌파구를 SSG닷컴으로 보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최근 SSG닷컴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고 그 수장에 강희석 이마트 대표를 앉혔다. 정용진 부회장이 SSG닷컴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SSG닷컴은 현재 상당한 성장세를 보인다. 별도 법인 설립 이전인 2016년 기준 SSG닷컴의 연간 거래액은 2조 원 수준이었으나 2020년에는 이미 3분기 기준으로 누적 거래액 2조8천억 원을 달성했으며 연간 거래액 4조 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성장세가 가파르다고는 해도 절대적 수치로 보면 이커머스의 절대강자, 네이버쇼핑, 쿠팡과 비교가 어려운 수준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도 네이버쇼핑과 쿠팡의 연간 거래액은 각각 21조 원, 17조 원이다. 2020년 기준으로는 더 커졌을 가능성이 크다.

SSG닷컴 역시 '정용진표 모방'으로 볼 수 있다. 세계의 모든 이커머스사업이 아마존과 이베이의 아류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제쳐놓고서라도 새벽배송, 픽업서비스 등 SSG닷컴의 서비스도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사업모델이다. SSG닷컴은 실제로 픽업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미국 월마트의 서비스를 벤치마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같은 모방전략을 통해 성장했는데 왜 이마트는 커다란 성공을 거둔 반면 SSG닷컴은 ‘전통 유통업체치고는 잘했다’라는 평가에 머물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속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마트는 분명 모방이었지만 대부분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따라 한 것이다. 트레이더스는 국내에 창고형 매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절의 프라이스클럽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으며 노브랜드 역시 국내에 GB(제너릭 브랜드)라는 개념이 제대로 소개되기 전부터 시작했던 사업이다.

하지만 SSG닷컴의 출범은 2014년, 별도 법인 설립이 2018년이다. 그때 이미 쿠팡은 소셜커머스업체에서 이커머스업체로 변신에 성공하고 아마존의 사업모델을 벤치마킹해 국내 이커머스시장에서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 SSG닷컴에서 모방에 기반한 창조가 가능할 것인가

물론 늦었다고 해서 SSG닷컴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유통업은 온라인 전환에 성공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SSG닷컴의 성패는 앞으로 좁게는 이마트, 넓게는 신세계그룹 전체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SSG닷컴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승부처는 무엇이 될까? 지금까지 ‘정용진표 모방‘이 아직 도달하지 못했던 길, 바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길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SSG닷컴은 전통적 유통업체의 온라인 전환 중에서는 상당히 성공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선식품 배송’이 있다.

기업 컨설팅 전문업체 커니의 파트너는 한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일상용품부문에서는 쿠팡이, 가격비교부문에서는 네이버가, 신선식품부문에서는 SSG가 각각 국내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SSG닷컴이 신선식품 새벽배송에서 치고 나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이마트라는 거대한 오프라인 유통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바로 모방에 기반한 창조다. 2019년 6월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시작한 SSG닷컴은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장의 후발주자다. 하지만 SSG닷컴은 재활용 가능 보냉백인 ‘알비백’, 배송일 지정시스템 등 모방에서 더 나아간 창조를 통해 신선식품 새벽배송의 강자로 인정받고 있다. 

정용진표 모방은 실제로 수많은 장점이 있는 전략이다. 또 정용진 부회장의 개인적 매력, ‘소통왕’이라는 특성과 어울려 ‘트렌디함’이라는 시너지까지 내고 있다. 모방과는 얼핏 잘 접목이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과연 모방의 아이콘을 넘어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SSG닷컴과 화성국제테마파크가 각각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그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채널Who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