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2019년 임금협상이 3년째를 맞이했지만 타결에 이르는 길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장기화하는 교섭이 노동조합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은 여전히 교섭의 최대 쟁점인 현안 문제에서 양보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늘Who] 현대중공업 노사교섭 3년째, 한영석 새 기준 세우기 원해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모회사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앞두고 한 사장이 현대중공업그룹 조선계열사에서 노조에 휘둘리지 않는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교섭 장기화를 감수하고 있다는 시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4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2021년의 교섭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노사교섭 간사들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2020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뿐만 아니라 2019년 임금협상 교섭도 아직 타결하지 못하고 두 교섭을 묶어 통합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노사는 설 명절 전에 교섭을 타결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교섭시간을 늘리는 데는 뜻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의견차를 좁히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12월31일 현대중공업 사내소식지 ‘인사저널’에서 공개된 회사 제시안에 따르면 한영석 사장은 2019년 5월31일 열린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에서 폭력행위로 해고된 조합원 4명의 복직이나 노조 고발조치 등 현안문제와 관련해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논의한다는 기존 태도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현안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노조에 조건마저 내걸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노사 모두 한 사장이 내건 조건을 놓고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노조는 “노동3권을 포기하라는, 노조의 존재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요구를 받았다”고 귀뜸했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중공업 직원은 “회사가 5월31일 주주총회에서의 폭력행위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심사에 적극 동참, 생산성 향상 동참, 2021년 무쟁의 선포 약속 등 5가지를 조합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한 사장은 이번 교섭에서 현대중공업의 노사관계를 회사 우위의 관계로 재정립하기 위해 노조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로 노조의 기세를 꺾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3사(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에는 별도의 노조가 세워져 있다”면서도 “노사 교섭에서는 다른 두 조선사 노조가 ‘맏형’ 현대중공업의 교섭에 맞춰 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 노조는 모두 전국금속노동조합 소속의 ‘강성’노조다. 그런데 한국조선해양이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노조도 금속노조 소속이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관련한 유럽연합의 기업결합심사에서 제3자 지위를 활용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기도 하다.

현대중공업이 노조와 교섭에서 단호한 모습을 보이면 대우조선해양도 앞으로 노사교섭에서 노조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조선업계는 한 사장이 현대중공업그룹 조선사 노사관계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한 사장의 요구와 관련해 노조가 주총 폭력사태의 사과나 기업결합심사 동참, 생산성 향상 동참 등은 문구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교섭의 장기화가 노조의 현 집행부에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는 “현 집행부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물적분할과 기업결합을 반대하기 위해 교섭 타결을 지연하며 실리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며 “올해 투표에서는 집행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조경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지부장은 2019년 11월의 노조위원장 선출투표에서 54.3%의 지지만을 받았다. 애초부터 현 집행부는 과거 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처럼 커다란 지지를 받고 당선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발언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요소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현대중공업지주 4사 노조가 단일 조직으로 묶인 ‘4사 1노조’ 체제를 유지해왔다

이 체제는 한 회사의 교섭이 잠정합의에 도달해도 다른 회사들의 교섭이 모두 끝날 때까지 타결에 이를 수 없어 노조 발언력의 기반으로 자리잡아왔다.

그러나 2020년 6월 현대중공업지주에서 물적분할로 설립된 현대로보틱스에 독자 노조가 생기면서 현대중공업 노조의 단일노조 체제가 무너졌다.

신생 현대로보틱스 노조가 2년치 교섭을 지난해 9월 속전속결로 타결하자 현대중공업 노조 내부에서 ‘우리도 독자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오늘Who] 현대중공업 노사교섭 3년째, 한영석 새 기준 세우기 원해

▲ 조경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지부장.


단일노조체제가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현대중공업 노조가 현체제를 보장받으려면 단체협약 교섭에서 실리를 찾아야 한다. 그만큼 임금협상과 현안 문제에서는 일부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사장은 임금에서 어느 정도 양보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9년 임금과 관련해서는 기본급 4만6천 원(정기승급분 2만3천 원 포함) 인상과 성과금 216%, 2020년 임금과 관련해서는 기본급 동결(정기승급분 2만3천 원 별도로 인상)과 성과금 131%를 노조에 제시했다. 두 해의 교섭 모두 별도의 타결 격려금도 포함돼 있다.

그룹의 다른 두 조선사뿐만 아니라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계의 다른 조선사들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한 사장은 업계 최고 임금을 제시해 노조가 현안문제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명분을 준비해둔 셈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교섭은 서로의 의견 조율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만큼 현재 시점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를 공개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노사 모두 조속한 타결을 향한 의지가 있는 만큼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