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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류근영 기자
2020-06-12   /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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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 생애

    주호영은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다.

    판사 출신으로 대구경북지역이 정치적 기반인 5선의원이다. 보수적이지만 법률가 답게 논리적으로 정견을 펼친다.

    1960년 12월10일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서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일하다 2003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수성구을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며 친이계 정치인 대열에 합류했다.

    새누리당 당대표선거에 비박계 단일후보로 나섰으나 친박계 이정현 후보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박근혜 게이트로 새누리당이 분당사태를 겪자 김무성 의원 등과 함께 집단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바른정당에서 창당준비위원장과 원내대표로 활동했다.

    보수통합 명분을 내세우며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

    21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대구 수성구을에서 수성구갑으로 옮겨 당선됐다.

    21대 국회에서 통합당의 첫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 활동의공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출범과 미래한국당과 합당에 기여
    주호영은 통합당 원내대표에 오른 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통합당의 제도체제로 정착하고 미래한국당과 합당을 매듭지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주호영이 원내 사령탑에 올랐을 때 통합당은 지도부 공백상태였다. 황교안 전 대표가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심재철 전 원내대표가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았지만 심 전 원내대표 역시 총선에서 낙선한 처지여서 정치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사작되기 전 주호영은 원내대표 당선인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보 공백상태인 통합당에서 일찌감치 주도권을 쥐게 됐다.

    주호영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다음 지도체제로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21대 국회의원 당선인들과 당원들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김종인 비대위를 놓고 당내 ‘자강론자’들은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정상적 절차를 밟아 당대표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인도 충분한 임기와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비대위원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하는 상황이었다.

    주호영은 2012년 4월 재보궐선거까지 비대위를 유지하는 안으로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와 당내 의원들을 설득해 비대위를 출범했고 당내에서 지도력을 인정 받았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미래한국당과 통합도 이뤄졌다.

    애초 미래한국당 내에서 단독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한다거나 통합시점을 미룰 수 있다는 말이 나왔지만 주호영은 신속히 당 지도체제를 정비한 뒤 일사천리로 통합을 진행했다.

    ▲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왼쪽)가 2020년 5월28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가운데)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함께 청와대 상춘재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 첫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주호영은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미래통합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주호영은 2020년 4월15일에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수성구갑 선거구에 출마해 5선 고지에 올랐다. 원래 지역구는 수성구을이었는데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수성구갑으로 옮겨서 출마한 것이다.

    주호영은 민주당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부겸 후보와 겨뤄 3만1556표의 큰 표 차로 이겼다.

    21대 국회에서 당내 최다선(5선) 의원이 된 주호영은 통합당의 원내대표 경선에도 출마했다.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원회 의장 후보로는 3선의 이종배 의원을 선택했다.

    주호영은 경쟁자로 나선 4선의 권영세 후보와 대결을 펼쳤는데 투표 결과 당선인 84명 가운데 59표를 얻어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주호영은 2020년 5월8일 원내대표 결선투표에서 당선된 뒤 당선인사를 통해 “기쁨보다 책임감이 어깨를 누른다”며 “1~2년 안에 제대로 하지 못하면 우리는 역사에서 사라지는 정당이 될 것이라는 절박감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복당 후 활동
    주호영은 바른정당에서 탈당해 친정인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 뒤 지역구 대구 수성구을의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을 다시 맡았다. 

    당시 주호영은 4선 의원이었는데 당내 4선 이상 중진들과 함께 홍준표 대표에게 중진회의 개최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홍 대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 대표는 중진의원들 면면이 당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며 거절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하며 홍준표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주호영은 중진인 까닭에 홍준표 대표 이후 당을 이끌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한국당 지도체제는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로 결정됐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탈당과 복당
    주호영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정국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세우는 데 참여했지만 결국 새누리당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를 2016년 말 무렵 주호영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비박근혜계 의원들과 함께 새누리당을 나와 가칭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준비했다.

    개혁보수신당은 이후 당이름을 바른정당으로 확정한 뒤 의석수 33석의 국회 교섭단체로 세를 불렸다.

    당시 주호영은 창당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바른정당 창당에 중책을 맡았고 바른정당의 초대 원내대표로 추대됐다.

    이후 바른정당 대표였던 정병국 의원이 중도에 당대표에서 물러나자 주호영은 원내대표로서 당대표 권한대행까지 맡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이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정되며 열린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바른정당은 유승민 의원을 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했다. 이 때 주호영은 김무성 의원과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유승민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뒤 바른정당은 이혜훈 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했지만 이혜훈 대표가 사퇴하자 주호영은 다시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이후 주호영은 보수통합을 명분으로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19대 대선 이전에 바른정당 소속 의원 13명의 집단탈당이 있었는데 주호영은 2017년 11월6일 두 번째 집단탈당 때 동료 의원 8명과 함께 바른정당을 나왔고 그로부터 3일 뒤인 11월9일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2017년 10월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바른정당 최고위원회의에서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박근혜계 득세에 비주류로 밀려
    주호영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당내 중진으로서 정치적 보폭을 넓혔지만 친이계였던 탓에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에서 비주류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주호영은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해 중진 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이후로도 주호영은 당 정책위원회 의장, 국회 정보위원장 등 굵직한 직책을 맡았다.

    2015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에 발탁되기도 했다. 친이계였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하며 친이계와 친박계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에서 결국 주호영의 입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친박계는 친이계 등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이른바 ‘공천학살’을 했는데 주호영도 대상이 됐다.

    주호영은 지역구 대구 수성을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당에서 나와 무소속으로 출마해 친박이었던 이인선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당선돼 4선 고지에 올랐다.

    주호영은 다시 새누리당에 돌아간 뒤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지만 전당대회에서 3만1946표를 얻는 데 그치며 4만4421표를 얻은 친박계 이정현 후보에게 밀려 2위를 했다.

    △정계입문 뒤 친이명박계 활동
    주호영은 판사로 일하다 2003년에 변호사로 개업했는데 그 다음해인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초선 의원일 때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 주호영을 직접 영입해 비서실장으로 삼았다.

    이후 대선 때 이 전 대통령의 비서실 부실장으로 일했다. 이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당선인 대변인을 맡았다.

    친이계였던 주호영은 이명박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 2008년 재선고지에 오른 뒤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운영위원회 간사 등을 지냈고 2009년에 처음 신설된 특임장관에 오르기도 했다.

    장관에서 물러난 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 비전과 과제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김 내정자의 사무실에서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를 만난 뒤 웃으며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의 혁신을 이뤄 수권정당으로서 면모를 갖춰야 한다.

    당장은 제1 야당 원내대표로서 강한 여당을 상대해 원구성에서 통합당의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통합당의 의석은 103석으로 민주당이 확보한 177석보다 크게 뒤진다. 민주당은 개헌 빼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나돈다.

    주호영으로서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 셈이다.

    당장에 원구성을 놓고 두 당 사이 갈등이 첨예하다.

    주호영은 이전 국회의 관례대로 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예산결산위원회의 위원장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민주당 쪽은 법사위와 예결위 위원장을 내줄 수 없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의석 수에서 크게 밀리는 통합당에서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에서 주호영에게 큰 고민이 있다.

    앞으로도 여야가 맞서는 상황에서 압도적 다수인 민주당의 뜻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주호영은 이전의 원내대표들보다 더 노련한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강경한 대여 투쟁에 나서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주호영 이전의 원내대표들이나 당 지도부는 단식투쟁, 물리적 행동 등에 나서며 여당을 압박했지만 오히려 국민들의 눈총을 받았다는 평가가 많고 그 결과가 총선에 반영돼 패배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 점에서 주호영은 강경노선을 선택하기 보다는 국민이 이해할 만한 합리적 태도를 보이며 여당과 정책경쟁을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원내대표에 오른 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른 것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에 가는 등 이전 원내대표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런 맥락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김종인 비대위와 함께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일도 해야 한다.

    2020년 6월4일 공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통합당의 지지율은 27.5%로 민주당 42.8%를 크게 밑돈다. 이 여론조사는 TBS 의뢰로 리얼미터가 2020년 6월 1~3일 사흘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3만2368명에게 통화를 시도해 최종 1510명의 응답을 받아 이뤄졌다. 신뢰 수준은 95%, 표본 오차는 ±2.5%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평가

    친이명박계로 대표적 정치인으로 꼽힌다.

    판사 출신으로 원칙주의자로 알려졌다. “죄인 10명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사람 1명을 만들지 말자”를 소신으로 삼았다고 한다.

    2002년 1년간 형사항소부장으로 재직하면서 1심 단독판사가 선고한 항소사건 1600여건 가운데 70여건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대부분을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3건이 뒤집혔을 뿐 모두 무죄처리됐다.

    로스쿨제도를 놓고 “필리핀처럼 변호사 자격증을 지닌 사람이 택시운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소신으로 적절한 인원통제를 주장하며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다.

    일 욕심이 많은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5월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으로 취임한 이후 세월호 진상조사를 비롯해 배상과 보상, 각종 정책과제 수립, 당정협의 등에 적극적이었다. 

    2014년 11월에는 당내 방위산업비리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기도 했다. 워낙 언론에 많이 등장하자 당내에서는 ‘모든 일을 떠맡는거냐’는 질시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2004년 26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가 NGO 모니터단’의 국감평가결과 법사위 1위 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차분한 언행과 논리정연한 태도로 주변의 호감을 얻는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TV토론에 자주 출연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크게 신뢰했다고 한다.

    특히 불교계에서 신뢰를 얻고 있다. 불교계에서 “주호영을 모르면 스님이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맥이 탄탄하다고 알려졌다. 

    어릴 적 경북 울진 동림사에서 놀았고 불교재단이 운영하는 대구 능인고를 다니며 불심을 키웠다고 한다. 1992년 김천지원에서 재직하던 시절부터 직지사를 드나들며 불경공부를 했다. ‘자우’라는 법명도 있다.

    국회 불교도 의원모임 '정각회' 명예회장이기도 하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삼고초려 끝에 주호영을 영입했는데 이는 기독교인이었던 이명박 후보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핵심측근이자 실세로 부각됐다. 이명박 정부 특임장관으로 대통령의 뜻을 당과 정치권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취미는 다도다. 

    친화력이 있다고 알려졌지만 스스로는 내성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역에 나오는 ‘계영노겸(戒盈勞謙ㆍ넘치는 것을 경계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겸손하라)’을 좌우명으로 삼고 산다고 한다.

    주성영 의원과 자주 혼동된다고 알려졌다. 같은 법조인 출신에 같은 대구 출신인 데다 고향도 울진으로 같다.

    ◆ 사건사고

    ▲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이 2004년 연극 '환생경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빗댄 '노가리'로 연기를 하는 모습. <오마이뉴스TV 유튜브 채널 캡처>

    △'조국씨' 호칭 논란
    주호영은 2019년 10월1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두고 '조국씨'라 불렀다. 

    주호영은 "조국씨를 법무부 장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따로 부를 방법도 없어서 법무부 장관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이 항의하며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로교통법 위반 논란
    주호영은 대구 수성구 민생투어 대장정 도중 이동하는 쓰레기 수거차량 발판에 올라 도로교통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혐의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함께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당시 주호영은 황교안 대표와 함게 안전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쓰레기 수거차에 매달려 이동했다. 이들을 고발한 문길주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사무국장은 "이는 실정법상 도로교통법 위반이고 환경미화원 노동자 작업 안전지침을 어겨 산업안전보건법 또한 위반했다"고 진술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
    2014년 7월24일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비유해 논란을 불렀다.

    주호영은 “세월호 참사는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며 “천안함은 군인으로 임무에 종사하다 사고를 입은 것이기에 천안함 때보다 세월호 참사에 더 많은 국가 예산이 들어가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대형사고가 나면 전부 국가가 돈 다 대주느냐”며 “최소한 천안함 피해자들보다 과잉보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은 이런 발언을 일제히 비판했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케 한다”며 “세월호 100일이 되는 날에 다시 유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세월호 가족대표단은 이후 주호영과 동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주호영은 이후 2014년 12월9일 세월호 유가족 및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과 관련해 “야당은 피해자, 피해자와 관련 있는 사람들에 대해 전액 부담하는 손해 이외에 추가로 보상을 더 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에 따른 직접적 손해 이외에 특별보상금을 주자는 야당의 주장은 수천 년 내려오는 손해배상체계의 근본을 깨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다운계약서 논란
    주호영은 이명박 정부에서 특임장관에 임명됐는데 2009년 9월15일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주호영이 보유했던 강남 아파트가 다운계약서로 작성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계약서에 따르면 주호영은 2003년 5월3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을 1억3500만 원에 구입했다. 하지만  당시 시가는 6억 원 이상이었다.

    주호영은 구입 시 재산신고에 5억5천만 원으로 신고해 결과적으로 4억1500만 원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비하 연극
    2004년 8월28일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환생경제’ 연극공연으로 논란을 낳았다.

    환생경제는 노 대통령을 가리키는 ‘노가리’라는 이름의 아버지가 매일같이 술주정만 벌여 경제라는 이름의 둘째아들이 죽었으나 어머니 박근애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되살아난다는 내용의 정치풍자극이다.

    한나라당 의원 20여 명이 배역을 맡았는데 주호영은 노가리 역을 맡았다.

    그러나 성적 비하와 욕설이 지나치게 많아 각계각층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연극 중 배우들은 노가리 아버지를 향해 성적인 비하와 원색적인 욕설도 사용했다.

    주호영은 연극 다음날 새벽 기자들이 “연극 내용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묻자 “닷새 동안 연습하는데만 급급해 그런 점에는 신경쓰지 못했다”며 “너무 정치적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말했다.

    △판사 시절 교통사고
    1998년 3월 11일 경북 영덕지원장으로 일할 당시 중앙선을 침범한 차와 추돌해 대형사고가 났다. 두개골 골절 등 중상을입은 뒤 헬기로 긴급 후송돼 13시간의 대수술 끝에 회복했다.

    ◆ 경력

    ▲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이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 후보 지원유세를 하며 유세차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주호영 페이스북>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5년 군법무관에 임용됐다.

    1988년 판사로 임용돼 2003년까지 근무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선거구에 공천받고 출마해 당선됐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한나라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소속 유시민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한나라당 원내 수석부대표를 맡았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특임장관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았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4년까지 새누리당 대구시당위원장을 역임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2015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을 잠시 맡았다가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수성을에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6년 8월 새누리당 당대표선거에 비박계 단일후보로 나섰으나 친박계인 이정현 후보에 패배했다.

    2016년 말 박근혜 게이트로 새누리당이 분당사태를 겪자 김무성 의원 등과 함께 집단탈당했다. 보수신당을 만들고 원내대표로 추대됐다. 이후 보수신당의 이름은 '바른정당'으로 확정됐다.

    2020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 학력

    1975년 경상중학교를 졸업했다.

    1978년 능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2년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배우자 김선희씨와 사이에 2남이 있다.

    ◆ 상훈

    ◆ 기타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로 등록하며 재산 35억3800만 원을 신고했다.

    군 법무관으로 임관해 육군 중위로 전역했다.

    ◆ 어록

    ▲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2014년 여름 거리에서 '반성과 혁신의 1인 피켓' 운동을 하고 있다. <주호영 페이스북>

    "단독 개원은 20대 국회까지 한 차례도 없었다." (2020/06/04,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의원총회에서)

    "자기들 편한 것만 내세워서 '개원은 법대로 지키자'라고 하는데 저희는 동의할 수 없다. '법대로'를 외치지 않은 독재 정권이 없다. 자기들 편리한 법을 만들어놓고 그 부분을 멋대로 해석하면서 독재를 해왔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도 법치주의를 외치며 독재를 했다." (2020/06/02,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하나가 된 우리 당은 앞으로 신속하고 힘있게 민생 현안 해결에 나서겠다. 저는 손자병법이나 어느 전략 서적에서도 '병력을 나눠 싸우라'는 얘기는 보지 못했다. 병력은 집중해서 운영하고 기동성을 살려야 한다." (2020/05/27, 미래한국당과 통합을 매듭진 뒤 페이스북에서)

    "결정이 되면 반대 의견을 갖더라도 흔쾌히 도와달라." (2020/05/21, 미래통합당 당선인 워크숍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지도체제를 결정하는 문제를 놓고)

    "우리 당은 바닥까지 왔다. 1∼2년 안에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재집권할 수 없고 그야말로 역사에서 사라지는 정당이 될 것이라는 절박감을 갖고 있다." (2020/05/08, 국회에서 원내다표에 당선된 뒤 당선인사말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참 가지가지 한다. 지금부터 토론을 시작하겠다." (2019/12/14,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를 시작하며) 

    “외교부가 반기문 전 총장 귀국의전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 전 총장을 견제하려면 사무총장으로 있을 동안의 잘못을 따져야지 야당이 반 전 총장 의전을 시비거는 것은 과도하다.” (2017/01/09, 바른정당 전체회의 및 정책의총에서)

    “옳은 길로 가는 우리들의 결정이 반드시 지지를 받고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앞으로 제대로 된 떳떳한 보수가 되겠다.” (2017/01/05,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바른정당 창당발기인 대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끝난 비극적 사건을 막지 못한 책임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실장하던 문재인 전 의원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2017/01/05, 국회에서 열린 창당준비회의에 참석해)

    “모든 것은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 생각한다. 만 번을 꺾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간다는 말로 중국의 장강은 느리게 가고 빨리도 가고 이리저리 꺾여도 동쪽으로 간다.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뜻으로 시간이 흐르면 신당이 보수를 대변하게 될 것이다.” (2017/01/04, 대구 수성구의 한 식당에서 지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호박을 수박으로 바꿔달라는게 아니라 수박으로 종자를 바꿔 태어나는 것이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말한 문재인 전 대표는 걱정마라. 최순실 사태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이 어디있느냐, 야당도 마찬가지다.” (2016/12/27, 바른정당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된 후 기자들과 만나)

    “드디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정치를 할 수 있는 정당이 탄생했다고 감히 말씀드린다. 오늘 출범한 신당이 반드시 대세가 되고 국가를 책임지고 운영할 정당이 될 것” (2016/12/27, 바른정당 원내대표로 추대된 의원총회에서)

    “교육감 선거가 후보들의 인지도 부족으로 로또 선거가 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투표 용지에 후보이름 기재를 순환배열로 바꿨지만 여전히 인지도 부족으로 ‘깜깜이 선거’가 계속되고 있다. 교육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대부분 주에서 임명제를 채택하고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핀란드 등 교육이 발달한 나라들도 모두 교육감에 한해서는 임명제를 채택하고 있다. 교육감 임명제 도입이 필요하다.” (2014/06/09, 6·4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직후 새누리당 비상대책회의에서)

    “현지 주민을 중심으로는 원안대로 행정기관이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 여론이지만 그럴 경우 국가적 비효율을 초래하고 지역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당장 앞만 볼 것이 아니라 먼 장래의 후손들이 봤을 때도 나라와 지역에 도움이 되는 좋은 결정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09/12/16, 충남 연기군청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설명하며)

    “세종시에 대한 지나친 인센티브는 ‘가치배분의 왜곡’이라는 의견을 정부에 전했다.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한다.” (2009/11/20, 기자단과 오찬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연정 제안은 비정상적 정치구조 청산을 위한 결단’이라고 강변하면서 ‘여소야대=비정상’ ‘여대야소=정상’이라는 주장을 펼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여소야대건 여대야소건 국민이 선택한 것인데 이는 국민의 뜻을 정상이 아니라고 하는 비정상 발상이다. 대통령 권한은 국민이 위임한 것이어서 권력이양에는 국민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정치적 합의만으로 가능하다는 초법적 발언을 하고 있는데 국민은 헌법적 틀을 뛰어넘는 권한을 준 적이 없다.” (2005/08/05,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비판하며)

    “안상수 인천시장 여동생이 경찰에서 조사받는 동안 수사관들이 안 시장 여동생 집에 들이닥쳐 어린 딸을 직접 조사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은 딸이 발작까지 일으켰다. 이러니 수도이전 반대 지자체장에 대한 편파수사라는 의심이 드는 것 아니냐” (2004/10/08, 안상수 인천시장의 ‘굴비상자 2억원’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를 두고 안 시장을 엄호하며)

    “헌법상 입법 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된다. 친일파 재산 몰수에 국민들이 감정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겠지만 민주주의 법질서는 감정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2004/09/17,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일재산환수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국가 보안법을 폐지하면 인터넷에 김정일 찬양 사이트가 만들어져 공개적으로 활동해도 처벌할 수 없다.” (2004/09/06,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대해 반대하며)

    “지나친 서열파괴는 조직의 갈등과 분열을 일으킴으로써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2004/08/11, 48세의 첫 여성 대법관 후보로 김영란 대법관 후보자가 뽑히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 ◆ 활동의공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출범과 미래한국당과 합당에 기여
    주호영은 통합당 원내대표에 오른 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통합당의 제도체제로 정착하고 미래한국당과 합당을 매듭지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주호영이 원내 사령탑에 올랐을 때 통합당은 지도부 공백상태였다. 황교안 전 대표가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심재철 전 원내대표가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았지만 심 전 원내대표 역시 총선에서 낙선한 처지여서 정치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사작되기 전 주호영은 원내대표 당선인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보 공백상태인 통합당에서 일찌감치 주도권을 쥐게 됐다.

    주호영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다음 지도체제로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21대 국회의원 당선인들과 당원들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김종인 비대위를 놓고 당내 ‘자강론자’들은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정상적 절차를 밟아 당대표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인도 충분한 임기와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비대위원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하는 상황이었다.

    주호영은 2012년 4월 재보궐선거까지 비대위를 유지하는 안으로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와 당내 의원들을 설득해 비대위를 출범했고 당내에서 지도력을 인정 받았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미래한국당과 통합도 이뤄졌다.

    애초 미래한국당 내에서 단독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한다거나 통합시점을 미룰 수 있다는 말이 나왔지만 주호영은 신속히 당 지도체제를 정비한 뒤 일사천리로 통합을 진행했다.

    ▲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왼쪽)가 2020년 5월28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가운데)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함께 청와대 상춘재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 첫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주호영은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미래통합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주호영은 2020년 4월15일에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수성구갑 선거구에 출마해 5선 고지에 올랐다. 원래 지역구는 수성구을이었는데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수성구갑으로 옮겨서 출마한 것이다.

    주호영은 민주당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부겸 후보와 겨뤄 3만1556표의 큰 표 차로 이겼다.

    21대 국회에서 당내 최다선(5선) 의원이 된 주호영은 통합당의 원내대표 경선에도 출마했다.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원회 의장 후보로는 3선의 이종배 의원을 선택했다.

    주호영은 경쟁자로 나선 4선의 권영세 후보와 대결을 펼쳤는데 투표 결과 당선인 84명 가운데 59표를 얻어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주호영은 2020년 5월8일 원내대표 결선투표에서 당선된 뒤 당선인사를 통해 “기쁨보다 책임감이 어깨를 누른다”며 “1~2년 안에 제대로 하지 못하면 우리는 역사에서 사라지는 정당이 될 것이라는 절박감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복당 후 활동
    주호영은 바른정당에서 탈당해 친정인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 뒤 지역구 대구 수성구을의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을 다시 맡았다. 

    당시 주호영은 4선 의원이었는데 당내 4선 이상 중진들과 함께 홍준표 대표에게 중진회의 개최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홍 대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 대표는 중진의원들 면면이 당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며 거절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하며 홍준표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주호영은 중진인 까닭에 홍준표 대표 이후 당을 이끌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한국당 지도체제는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로 결정됐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탈당과 복당
    주호영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정국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세우는 데 참여했지만 결국 새누리당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를 2016년 말 무렵 주호영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비박근혜계 의원들과 함께 새누리당을 나와 가칭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준비했다.

    개혁보수신당은 이후 당이름을 바른정당으로 확정한 뒤 의석수 33석의 국회 교섭단체로 세를 불렸다.

    당시 주호영은 창당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바른정당 창당에 중책을 맡았고 바른정당의 초대 원내대표로 추대됐다.

    이후 바른정당 대표였던 정병국 의원이 중도에 당대표에서 물러나자 주호영은 원내대표로서 당대표 권한대행까지 맡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이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정되며 열린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바른정당은 유승민 의원을 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했다. 이 때 주호영은 김무성 의원과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유승민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뒤 바른정당은 이혜훈 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했지만 이혜훈 대표가 사퇴하자 주호영은 다시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이후 주호영은 보수통합을 명분으로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19대 대선 이전에 바른정당 소속 의원 13명의 집단탈당이 있었는데 주호영은 2017년 11월6일 두 번째 집단탈당 때 동료 의원 8명과 함께 바른정당을 나왔고 그로부터 3일 뒤인 11월9일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2017년 10월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바른정당 최고위원회의에서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박근혜계 득세에 비주류로 밀려
    주호영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당내 중진으로서 정치적 보폭을 넓혔지만 친이계였던 탓에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에서 비주류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주호영은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해 중진 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이후로도 주호영은 당 정책위원회 의장, 국회 정보위원장 등 굵직한 직책을 맡았다.

    2015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에 발탁되기도 했다. 친이계였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하며 친이계와 친박계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에서 결국 주호영의 입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친박계는 친이계 등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이른바 ‘공천학살’을 했는데 주호영도 대상이 됐다.

    주호영은 지역구 대구 수성을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당에서 나와 무소속으로 출마해 친박이었던 이인선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당선돼 4선 고지에 올랐다.

    주호영은 다시 새누리당에 돌아간 뒤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지만 전당대회에서 3만1946표를 얻는 데 그치며 4만4421표를 얻은 친박계 이정현 후보에게 밀려 2위를 했다.

    △정계입문 뒤 친이명박계 활동
    주호영은 판사로 일하다 2003년에 변호사로 개업했는데 그 다음해인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초선 의원일 때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 주호영을 직접 영입해 비서실장으로 삼았다.

    이후 대선 때 이 전 대통령의 비서실 부실장으로 일했다. 이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당선인 대변인을 맡았다.

    친이계였던 주호영은 이명박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 2008년 재선고지에 오른 뒤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운영위원회 간사 등을 지냈고 2009년에 처음 신설된 특임장관에 오르기도 했다.

    장관에서 물러난 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 ◆ 비전과 과제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김 내정자의 사무실에서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를 만난 뒤 웃으며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의 혁신을 이뤄 수권정당으로서 면모를 갖춰야 한다.

    당장은 제1 야당 원내대표로서 강한 여당을 상대해 원구성에서 통합당의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통합당의 의석은 103석으로 민주당이 확보한 177석보다 크게 뒤진다. 민주당은 개헌 빼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나돈다.

    주호영으로서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 셈이다.

    당장에 원구성을 놓고 두 당 사이 갈등이 첨예하다.

    주호영은 이전 국회의 관례대로 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예산결산위원회의 위원장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민주당 쪽은 법사위와 예결위 위원장을 내줄 수 없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의석 수에서 크게 밀리는 통합당에서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에서 주호영에게 큰 고민이 있다.

    앞으로도 여야가 맞서는 상황에서 압도적 다수인 민주당의 뜻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주호영은 이전의 원내대표들보다 더 노련한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강경한 대여 투쟁에 나서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주호영 이전의 원내대표들이나 당 지도부는 단식투쟁, 물리적 행동 등에 나서며 여당을 압박했지만 오히려 국민들의 눈총을 받았다는 평가가 많고 그 결과가 총선에 반영돼 패배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 점에서 주호영은 강경노선을 선택하기 보다는 국민이 이해할 만한 합리적 태도를 보이며 여당과 정책경쟁을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원내대표에 오른 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른 것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에 가는 등 이전 원내대표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런 맥락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김종인 비대위와 함께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일도 해야 한다.

    2020년 6월4일 공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통합당의 지지율은 27.5%로 민주당 42.8%를 크게 밑돈다. 이 여론조사는 TBS 의뢰로 리얼미터가 2020년 6월 1~3일 사흘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3만2368명에게 통화를 시도해 최종 1510명의 응답을 받아 이뤄졌다. 신뢰 수준은 95%, 표본 오차는 ±2.5%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 평가

    친이명박계로 대표적 정치인으로 꼽힌다.

    판사 출신으로 원칙주의자로 알려졌다. “죄인 10명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사람 1명을 만들지 말자”를 소신으로 삼았다고 한다.

    2002년 1년간 형사항소부장으로 재직하면서 1심 단독판사가 선고한 항소사건 1600여건 가운데 70여건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대부분을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3건이 뒤집혔을 뿐 모두 무죄처리됐다.

    로스쿨제도를 놓고 “필리핀처럼 변호사 자격증을 지닌 사람이 택시운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소신으로 적절한 인원통제를 주장하며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다.

    일 욕심이 많은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5월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으로 취임한 이후 세월호 진상조사를 비롯해 배상과 보상, 각종 정책과제 수립, 당정협의 등에 적극적이었다. 

    2014년 11월에는 당내 방위산업비리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기도 했다. 워낙 언론에 많이 등장하자 당내에서는 ‘모든 일을 떠맡는거냐’는 질시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2004년 26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가 NGO 모니터단’의 국감평가결과 법사위 1위 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차분한 언행과 논리정연한 태도로 주변의 호감을 얻는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TV토론에 자주 출연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크게 신뢰했다고 한다.

    특히 불교계에서 신뢰를 얻고 있다. 불교계에서 “주호영을 모르면 스님이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맥이 탄탄하다고 알려졌다. 

    어릴 적 경북 울진 동림사에서 놀았고 불교재단이 운영하는 대구 능인고를 다니며 불심을 키웠다고 한다. 1992년 김천지원에서 재직하던 시절부터 직지사를 드나들며 불경공부를 했다. ‘자우’라는 법명도 있다.

    국회 불교도 의원모임 '정각회' 명예회장이기도 하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삼고초려 끝에 주호영을 영입했는데 이는 기독교인이었던 이명박 후보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핵심측근이자 실세로 부각됐다. 이명박 정부 특임장관으로 대통령의 뜻을 당과 정치권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취미는 다도다. 

    친화력이 있다고 알려졌지만 스스로는 내성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역에 나오는 ‘계영노겸(戒盈勞謙ㆍ넘치는 것을 경계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겸손하라)’을 좌우명으로 삼고 산다고 한다.

    주성영 의원과 자주 혼동된다고 알려졌다. 같은 법조인 출신에 같은 대구 출신인 데다 고향도 울진으로 같다.

    ◆ 사건사고

    ▲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이 2004년 연극 '환생경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빗댄 '노가리'로 연기를 하는 모습. <오마이뉴스TV 유튜브 채널 캡처>

    △'조국씨' 호칭 논란
    주호영은 2019년 10월1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두고 '조국씨'라 불렀다. 

    주호영은 "조국씨를 법무부 장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따로 부를 방법도 없어서 법무부 장관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이 항의하며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로교통법 위반 논란
    주호영은 대구 수성구 민생투어 대장정 도중 이동하는 쓰레기 수거차량 발판에 올라 도로교통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혐의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함께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당시 주호영은 황교안 대표와 함게 안전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쓰레기 수거차에 매달려 이동했다. 이들을 고발한 문길주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사무국장은 "이는 실정법상 도로교통법 위반이고 환경미화원 노동자 작업 안전지침을 어겨 산업안전보건법 또한 위반했다"고 진술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
    2014년 7월24일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비유해 논란을 불렀다.

    주호영은 “세월호 참사는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며 “천안함은 군인으로 임무에 종사하다 사고를 입은 것이기에 천안함 때보다 세월호 참사에 더 많은 국가 예산이 들어가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대형사고가 나면 전부 국가가 돈 다 대주느냐”며 “최소한 천안함 피해자들보다 과잉보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은 이런 발언을 일제히 비판했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케 한다”며 “세월호 100일이 되는 날에 다시 유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세월호 가족대표단은 이후 주호영과 동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주호영은 이후 2014년 12월9일 세월호 유가족 및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과 관련해 “야당은 피해자, 피해자와 관련 있는 사람들에 대해 전액 부담하는 손해 이외에 추가로 보상을 더 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에 따른 직접적 손해 이외에 특별보상금을 주자는 야당의 주장은 수천 년 내려오는 손해배상체계의 근본을 깨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다운계약서 논란
    주호영은 이명박 정부에서 특임장관에 임명됐는데 2009년 9월15일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주호영이 보유했던 강남 아파트가 다운계약서로 작성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계약서에 따르면 주호영은 2003년 5월3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을 1억3500만 원에 구입했다. 하지만  당시 시가는 6억 원 이상이었다.

    주호영은 구입 시 재산신고에 5억5천만 원으로 신고해 결과적으로 4억1500만 원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비하 연극
    2004년 8월28일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환생경제’ 연극공연으로 논란을 낳았다.

    환생경제는 노 대통령을 가리키는 ‘노가리’라는 이름의 아버지가 매일같이 술주정만 벌여 경제라는 이름의 둘째아들이 죽었으나 어머니 박근애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되살아난다는 내용의 정치풍자극이다.

    한나라당 의원 20여 명이 배역을 맡았는데 주호영은 노가리 역을 맡았다.

    그러나 성적 비하와 욕설이 지나치게 많아 각계각층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연극 중 배우들은 노가리 아버지를 향해 성적인 비하와 원색적인 욕설도 사용했다.

    주호영은 연극 다음날 새벽 기자들이 “연극 내용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묻자 “닷새 동안 연습하는데만 급급해 그런 점에는 신경쓰지 못했다”며 “너무 정치적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말했다.

    △판사 시절 교통사고
    1998년 3월 11일 경북 영덕지원장으로 일할 당시 중앙선을 침범한 차와 추돌해 대형사고가 났다. 두개골 골절 등 중상을입은 뒤 헬기로 긴급 후송돼 13시간의 대수술 끝에 회복했다.

  • ◆ 경력

    ▲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이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 후보 지원유세를 하며 유세차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주호영 페이스북>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5년 군법무관에 임용됐다.

    1988년 판사로 임용돼 2003년까지 근무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선거구에 공천받고 출마해 당선됐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한나라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소속 유시민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한나라당 원내 수석부대표를 맡았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특임장관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았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4년까지 새누리당 대구시당위원장을 역임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2015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을 잠시 맡았다가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수성을에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6년 8월 새누리당 당대표선거에 비박계 단일후보로 나섰으나 친박계인 이정현 후보에 패배했다.

    2016년 말 박근혜 게이트로 새누리당이 분당사태를 겪자 김무성 의원 등과 함께 집단탈당했다. 보수신당을 만들고 원내대표로 추대됐다. 이후 보수신당의 이름은 '바른정당'으로 확정됐다.

    2020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 학력

    1975년 경상중학교를 졸업했다.

    1978년 능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2년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배우자 김선희씨와 사이에 2남이 있다.

    ◆ 상훈

    ◆ 기타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로 등록하며 재산 35억3800만 원을 신고했다.

    군 법무관으로 임관해 육군 중위로 전역했다.

  • ◆ 어록

    ▲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2014년 여름 거리에서 '반성과 혁신의 1인 피켓' 운동을 하고 있다. <주호영 페이스북>

    "단독 개원은 20대 국회까지 한 차례도 없었다." (2020/06/04,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의원총회에서)

    "자기들 편한 것만 내세워서 '개원은 법대로 지키자'라고 하는데 저희는 동의할 수 없다. '법대로'를 외치지 않은 독재 정권이 없다. 자기들 편리한 법을 만들어놓고 그 부분을 멋대로 해석하면서 독재를 해왔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도 법치주의를 외치며 독재를 했다." (2020/06/02,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하나가 된 우리 당은 앞으로 신속하고 힘있게 민생 현안 해결에 나서겠다. 저는 손자병법이나 어느 전략 서적에서도 '병력을 나눠 싸우라'는 얘기는 보지 못했다. 병력은 집중해서 운영하고 기동성을 살려야 한다." (2020/05/27, 미래한국당과 통합을 매듭진 뒤 페이스북에서)

    "결정이 되면 반대 의견을 갖더라도 흔쾌히 도와달라." (2020/05/21, 미래통합당 당선인 워크숍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지도체제를 결정하는 문제를 놓고)

    "우리 당은 바닥까지 왔다. 1∼2년 안에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재집권할 수 없고 그야말로 역사에서 사라지는 정당이 될 것이라는 절박감을 갖고 있다." (2020/05/08, 국회에서 원내다표에 당선된 뒤 당선인사말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참 가지가지 한다. 지금부터 토론을 시작하겠다." (2019/12/14,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를 시작하며) 

    “외교부가 반기문 전 총장 귀국의전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 전 총장을 견제하려면 사무총장으로 있을 동안의 잘못을 따져야지 야당이 반 전 총장 의전을 시비거는 것은 과도하다.” (2017/01/09, 바른정당 전체회의 및 정책의총에서)

    “옳은 길로 가는 우리들의 결정이 반드시 지지를 받고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앞으로 제대로 된 떳떳한 보수가 되겠다.” (2017/01/05,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바른정당 창당발기인 대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끝난 비극적 사건을 막지 못한 책임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실장하던 문재인 전 의원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2017/01/05, 국회에서 열린 창당준비회의에 참석해)

    “모든 것은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 생각한다. 만 번을 꺾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간다는 말로 중국의 장강은 느리게 가고 빨리도 가고 이리저리 꺾여도 동쪽으로 간다.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뜻으로 시간이 흐르면 신당이 보수를 대변하게 될 것이다.” (2017/01/04, 대구 수성구의 한 식당에서 지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호박을 수박으로 바꿔달라는게 아니라 수박으로 종자를 바꿔 태어나는 것이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말한 문재인 전 대표는 걱정마라. 최순실 사태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이 어디있느냐, 야당도 마찬가지다.” (2016/12/27, 바른정당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된 후 기자들과 만나)

    “드디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정치를 할 수 있는 정당이 탄생했다고 감히 말씀드린다. 오늘 출범한 신당이 반드시 대세가 되고 국가를 책임지고 운영할 정당이 될 것” (2016/12/27, 바른정당 원내대표로 추대된 의원총회에서)

    “교육감 선거가 후보들의 인지도 부족으로 로또 선거가 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투표 용지에 후보이름 기재를 순환배열로 바꿨지만 여전히 인지도 부족으로 ‘깜깜이 선거’가 계속되고 있다. 교육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대부분 주에서 임명제를 채택하고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핀란드 등 교육이 발달한 나라들도 모두 교육감에 한해서는 임명제를 채택하고 있다. 교육감 임명제 도입이 필요하다.” (2014/06/09, 6·4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직후 새누리당 비상대책회의에서)

    “현지 주민을 중심으로는 원안대로 행정기관이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 여론이지만 그럴 경우 국가적 비효율을 초래하고 지역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당장 앞만 볼 것이 아니라 먼 장래의 후손들이 봤을 때도 나라와 지역에 도움이 되는 좋은 결정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09/12/16, 충남 연기군청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설명하며)

    “세종시에 대한 지나친 인센티브는 ‘가치배분의 왜곡’이라는 의견을 정부에 전했다.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한다.” (2009/11/20, 기자단과 오찬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연정 제안은 비정상적 정치구조 청산을 위한 결단’이라고 강변하면서 ‘여소야대=비정상’ ‘여대야소=정상’이라는 주장을 펼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여소야대건 여대야소건 국민이 선택한 것인데 이는 국민의 뜻을 정상이 아니라고 하는 비정상 발상이다. 대통령 권한은 국민이 위임한 것이어서 권력이양에는 국민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정치적 합의만으로 가능하다는 초법적 발언을 하고 있는데 국민은 헌법적 틀을 뛰어넘는 권한을 준 적이 없다.” (2005/08/05,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비판하며)

    “안상수 인천시장 여동생이 경찰에서 조사받는 동안 수사관들이 안 시장 여동생 집에 들이닥쳐 어린 딸을 직접 조사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은 딸이 발작까지 일으켰다. 이러니 수도이전 반대 지자체장에 대한 편파수사라는 의심이 드는 것 아니냐” (2004/10/08, 안상수 인천시장의 ‘굴비상자 2억원’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를 두고 안 시장을 엄호하며)

    “헌법상 입법 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된다. 친일파 재산 몰수에 국민들이 감정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겠지만 민주주의 법질서는 감정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2004/09/17,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일재산환수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국가 보안법을 폐지하면 인터넷에 김정일 찬양 사이트가 만들어져 공개적으로 활동해도 처벌할 수 없다.” (2004/09/06,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대해 반대하며)

    “지나친 서열파괴는 조직의 갈등과 분열을 일으킴으로써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2004/08/11, 48세의 첫 여성 대법관 후보로 김영란 대법관 후보자가 뽑히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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