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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업 판단력 뛰어나, 인재 중시하며 전폭적 신뢰 [2017년]
백설희 나병현 기자 ssul20@businesspost.co.kr 2017-01-10 08: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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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이재현 CJ그룹 회장
▲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재현은 CJ그룹 회장이다. 공격적인 경영으로 매출 2조 원 안팎의 식품기업에 불과한 제일제당에서 출발해 엔터테인먼트, 홈쇼핑, 물류 등을 아우르는 매출 29조 원 대의 종합생활문화그룹으로 키웠다.

조세포탈 등으로 수감됐다가 2016년 8월 사면돼 경영 공식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으로 박영수 특검의 수사대상에 오르면서 경영복귀 일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60년 3월19일 서울에서 이맹희 CJ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려대 법학과 졸업후 씨티은행을 거쳐 1985년 제일제당 평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경리부 과장, 제일제당 상무이사를 거쳐 1997년 제일제당 부사장, 1998년부터 제일제당 부회장을 맡았다.

2002년부터 CJ그룹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3년 검찰로부터 조세포탈 등으로 구속기소돼 이후 3년1개월간 1심, 2심에 파기환송심까지 거쳤지만 2년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구속수감 가운데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CMT)'병이 악화되고 2013년 받았던 신장이식수술까지 거부반응을 보이면서 건강이 악화됐다.

2016년 3월 CJ그룹 계열사의 모든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2016년 8월 재계 총수로는 유일하게 8.15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돼 출소했다. 사면 이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치료에 힘쓰다 2017년 공식적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타고난 사업수완과 뚝심있는 경영스타일로 ‘리틀 이병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식품회사 제일제당에서 바이오 생명과학,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물류 신유통 등 종합생활룹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경영을 맡은 지 17년 만에 15배가 넘는 성장을 이뤄내 전문가들은 그의 사업적 안목과 판단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중요시한다. 그룹 인트라넷에서 운영되는 ‘CEO대화방’을 통해 직원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전달할 수 있다.

중요한 보고는 하루 전에 관련 내용을 전달받는다. 즉석에서 받는 보고는 내용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질 뿐 아니라 시간낭비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루 앞서 전달받은 내용을 이해하고 발전방향을 미리 준비한 다음 정식보고에서 실무자와 논의한다.

인재중시 경영으로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기존 경영진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회사를 이끌게 되면서 ‘제일제당’이라는 기존 사명을 ‘CJ’로 바꿨다. 재계 2, 3세와 다르게 대외 행사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회사를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경영자로 평가 받는다.

CJ의 기존 식품 관련 사업 외에 미디어, 물류, 홈쇼핑 사업 등 다양함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CJ개발, CJ엔터테인먼트, CJ CGV, CJ홈쇼핑 등을 설립하거나 인수합병(M&A)하며 그룹의 덩치를 키워갔다.

식품과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해찬들, 하선정, 신동방, 한일약품 등을 인수했다.

2011년 대한통운 인수전에서부터 직접 사업에 관여하며 본격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CJ그룹의 미래에 중대한 시점에서 오너가 직접 나설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CJ그룹은 2011년 포스코를 물리치고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승자가 됐는데 이 배경에는 이재현이 직접 과감한 베팅을 지시한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CJ그룹의 경영을 맡은 지 17년 만에 15배가 넘는 성장을 이뤄내 전문가들로부터 사업적 안목과 판단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2011년을 기점으로 직원들과 거리를 두던 예전 모습에서 벗어나 직접 계열사 임원에게 전화를 걸거나 신입사원들과 면담을 하는 등 사내활동을 늘려갔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대학교 4학년 재학 시 1983년 씨티은행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의 뜻에 따라 1985년 9월 제일제당의 평사원으로 입사한다.

제일제당 입사 뒤 1993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상무를 맡을 때까지 7년 넘게 경리부 및 기획관리부에서 경험을 쌓았다.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상무를 맡은 몇 개월 뒤 다시 제일제당에 상무로 복귀했다.

1997년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회장, 1999년 제일투자신탁증권 비상임이사를 맡았다.

2002년 3월에 CJ그룹 회장에 취임했으며 2011년 CJ제일제당 대표이사를 맡았다.

2016년 3월 CJ그룹 계열사의 모든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 학력

1981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4년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삼성 재계 3세 중 유일하게 국내파로서 외국생활 경험이 없다.

◆ 가족관계

삼성그룹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이 할아버지이고 그 맏아들인 이맹희 CJ명예회장이 아버지다. 이맹희 회장은 이병철 회장과 불화를 겪으며 삼성에서 밀려나 대구와 부산 국내 산간벽지를 떠돌기도 했다.

어머니는 손복남 고문이다. 경기도 지사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닌 손영기씨가 외할아버지다.

위로는 누나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과 사촌지간이다.

1984년 김희재씨와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과장은 2016년 4월 코리아나 멤버 이용규의 딸인 이래나씨와 결혼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이래나씨는 2016년 11월 미국 뉴헤이븐 자택에서 숨졌다.

장녀인 이경후 CJ그룹 부장은 2013년 CJ오쇼핑 마케팅 대리로 입사해 현재 남편 정종환씨와 함께 미국에 살며 CJ그룹 미주법인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 상훈

1996년 WEF 올해의 차세대 지도자로 선정됐다.

2012년에는 매경이코노미 올해의 CEO에 올랐다.

◆ 상훈

1996년 WEF 올해의 차세대 지도자로 선정됐다.

2012년에는 매경이코노미 올해의 CEO에 올랐다.

어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해준 모든 CJ인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동안 회사의 성장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저에게 지난 3년은 육체적, 심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회사와 CJ인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너무 그립지만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 관계로 당분간 몸을 추스르는 데 전념할 계획이다.” (2016/08/16, 8.15특별사면 후 CJ 사내게시판에 올린 ‘CJ인(人) 여러분,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동안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치료와 재기의 기회를 준 대통령님과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치료에 전념해 빠른 시일내 건강을 회복하고 사업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노력하겠다.” (2016/08/12, 8.15특별사면 발표 직후 감사에 뜻을 전하며)

“모든 게 제 탓입니다. 건강을 잘 회복하고 선대 유지인 사업보국과 미완성의 CJ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들 기회를 재판장님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5/11/10,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선처를 호소하며)

“이 모든 사안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 국민과 CJ 가족들에게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 미완의 사업들을 궤도에 올려놓고 완성시킴으로써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싶다. 많은 시간이 남지 않은 제한적인 제 건강상태를 고려해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 신장 이식을 받은 50대 환자는 최장 15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한다. 내게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남은 시간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2014/01/14,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 당시 피고인 진술에서 )

“슬로건만 문화기업을 외쳐서는 안 된다. 직원들이 먼저 문화기업에 맞는 회사생활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2012/11/30, 직원 100명에게 홍콩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 현장 관람기회를 제공하며)

“호암재단을 통해 수차례 정문과 한옥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삼성측은 특별한 이유 설명 없이 거부했다. 삼성은 사실상 다른 형제와 그 자손들의 정상적인 선영 참배를 막고 있다” (2012/11/14, 이병철 선대회장 25주기 추모식에 뒷문을 사용하라는 삼성 측 입장을 받고 나서)

“CJ의 미래가 글로벌에 있는 만큼 해외공략에 주력해야 한다. 베트남은 연령대가 젊고 우수한 인력이 많으며, 높은 경제성장률 등 여러 장점을 갖고 있어 중국에 이어 가장 매력적인 국가다. 베트남에서 제3의 CJ를 건설하자” (2012/04/03, 베트남 호찌민에서 CJ그룹 계열사 경영진들과 가진 ‘CJ 글로벌 컨퍼런스’ 자리에서)

“CJ그룹의 물류 사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2020년 글로벌 톱5를 반드시 달성하고 궁극적으로 세계 1등을 지향해야 한다” (2012/03/02, CJ인재원에서 열린 '물류 사업 비전 선포식'에서 CJ인재원에서 열린 '물류 사업 비전 선포식'에서 2020년 매출 25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제시하며)

“실적이나 글로벌 가속화 등 사업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최근의 일자리 창출, 양극화 심화, 세대간 갈등 등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청년 실업 문제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불황일수록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중요하다” (2011/12/26, 2012년 경영계획 워크샵에서 그룹차원의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학비지원 등 지원방안을 지시하며)

“지금은 중소기업을 도와야할 때이니 CJ가 앞장서라.CJ 사업 전 부문에서 지원책을 마련하라. 단순히 시류에 편승한 선심성 정책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지속가능하며 중소기업의 실질적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방안이어야 한다” (2011/08/08, 중소기업 및 가맹점주에 대한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CJ 동반성장 및 상생 대책'을 발표하며)

“CJ와 출발점이 비슷했던 다른 기업들은 뛰어가는데 우리는 성장속도가 너무 더디다. 그룹 전반에 만연한 안주 문화를 타파하지 않고는 혁신적인 도약을 기대하기 어렵다” (2011/07/13, CJ그룹 주요 계열사 임원들에게 CJ그룹 전반에 퍼진 안주하는 문화를 질타하며)

“CJ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일 동안, CJ제일제당도 몸집은 커졌지만 ‘온리원(only one)’ 정신에 부합하지 못했다. 더 이상 CJ제일제당도 예외일 수는 없다” (2010/11/24, CJ제일제당 창립 57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CJ제일제당 임직원들에게 쓴소리를 하며)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평생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려 저소득층 어린이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재산은 인재라는 생각에 어린이들을 후원하려 CJ도너스 캠프를 시작했다” (2010/07/21, CJ인재원에서 열린 온라인 기부사이트 'CJ도너스캠프' 5주년 기념행사에서)

◆ 평가

타고난 사업수완과 뚝심있는 경영스타일로 ‘리틀 이병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식품회사 제일제당에서 바이오 생명과학,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물류 신유통 등 종합생활룹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경영을 맡은 지 17년 만에 15배가 넘는 성장을 이뤄내 전문가들은 그의 사업적 안목과 판단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중요시한다. 그룹 인트라넷에서 운영되는 ‘CEO대화방’을 통해 직원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전달할 수 있다.

중요한 보고는 하루 전에 관련 내용을 전달받는다. 즉석에서 받는 보고는 내용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질 뿐 아니라 시간낭비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루 앞서 전달받은 내용을 이해하고 발전방향을 미리 준비한 다음 정식보고에서 실무자와 논의한다.

인재중시 경영으로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기존 경영진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회사를 이끌게 되면서 ‘제일제당’이라는 기존 사명을 ‘CJ’로 바꿨다. 재계 2, 3세와 다르게 대외 행사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회사를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경영자로 평가 받는다.

CJ의 기존 식품 관련 사업 외에 미디어, 물류, 홈쇼핑 사업 등 다양함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CJ개발, CJ엔터테인먼트, CJ CGV, CJ홈쇼핑 등을 설립하거나 인수합병(M&A)하며 그룹의 덩치를 키워갔다.

식품과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해찬들, 하선정, 신동방, 한일약품 등을 인수했다.

2011년 대한통운 인수전에서부터 직접 사업에 관여하며 본격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CJ그룹의 미래에 중대한 시점에서 오너가 직접 나설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CJ그룹은 2011년 포스코를 물리치고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승자가 됐는데 이 배경에는 이재현이 직접 과감한 베팅을 지시한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CJ그룹의 경영을 맡은 지 17년 만에 15배가 넘는 성장을 이뤄내 전문가들로부터 사업적 안목과 판단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2011년을 기점으로 직원들과 거리를 두던 예전 모습에서 벗어나 직접 계열사 임원에게 전화를 걸거나 신입사원들과 면담을 하는 등 사내활동을 늘려갔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 기타

학생 시절 평범하게 지내 주변 친구들이 이병철 회장의 장손이란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대학을 다닐 때도 늘 버스를 이용했고 점심식사는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고 한다.

부인 김희재씨는 결혼 30주년에 남편을 위해 신장을 이식했다. 유학 중인 두 자녀가 귀국할 때마다 온 가족이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했다.

손과 발이 위축되는 희귀 유전병 ‘샤르코-마리-투스(CMT)’로 병역이 면제됐다.

1983년 삼성그룹이 아닌 씨티은행에 입사했는데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지면서 제일제당으로 옮겼다고 한다.

제일제당 부회장 시절 창의경영을 시행해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말단직원에서부터 CEO에 이르기까지 직급에 관계없이 이름 석자에 '님'자만 붙여 부르는 호칭파괴와 복장자율화, 플렉서블 출퇴근제 등을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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