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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조준호 LG전자 MC사업 사장

온화하고 치밀, 스마트폰 혁신 추진 [2016년-2]
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 2016-12-22 08: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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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조준호 LG전자 MC사업 사장
▲ 조준호 LG전자 MC사업본부 사장.


조준호는 LG전자 MC사업본부 사장이다. LG전자의 스마트폰사업을 이끌고 있다.

LG전자 스마트폰사업은 2015년 3분기부터 적자행진을 이어오고 있어 수익성 회복이 시급한 상태다.

1959년 2월1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휘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졸업했다.

LG전자에 입사해 LG경영혁신추진본부, LG구조조정본부를 거치며 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LG전자 MC사업본부 북미법인장을 맡아 휴대폰사업 실적을 크게 끌어올렸다. 50세에 사장으로 승진하며 LG그룹 최연소 사장이 되는 등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신임을 받으며 초고속승진했다.

LG 대표이사 사장, LG전자 MC사업본부장 등을 거쳐 LG전자 각자대표이사로 선임됐다.

LG전자는 2016년 말 인사에서 3인 각자대표체제를 1년 만에 조성진 부회장 1인 CEO체제로 전환했는데 조준호는 자리를 그대로 지켰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조준호는 LG그룹에서 대표적 전략가로 꼽힌다. 온화하면서도 치밀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V10을 내놓을 때 LG전자의 한 개발자는 조준호를 놓고 “(사장님께서) 묻고 또 물으십니다. 과거엔 그냥 지나쳤을 일도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998년 LG경영혁신 추진본부에서 LG그룹의 구조조정에 큰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 뒤 2004년 북미시장에서 LG전자 휴대폰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에 따라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준호는 LG그룹 안에서 최연소 기록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2002년 43세로 LG전자 정보통신 전략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해 최연소 부사장이 됐다. 2009년 최연소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MC사업본부를 맡게 된 것은 G3의 성공에 이어 LG전자의 스마트폰사업을 한단계 더 끌어올리려는 조처로 풀이됐다.

단말기획담당 임원으로 일하는 등 스마트폰사업뿐 아니라 이동통신 사업자들과 관계도 원활하게 구축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법인장 당시 2004년 초콜릿폰에 이어 2007년 샤인폰까지 연이어 성공시키며 LG전자를 북미 모바일시장 2위로 올려놓았다. 그는 LG전자에서 ‘초콜릿폰 신화’로 통했다.

스마트폰 이해도가 높고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내린다. 미소년 같은 외모로 업계에서 ‘훈남’으로 통한다. 성격은 내성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준호와 오랜 기간 일했던 업계 관계자는 “조 사장은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못하는 데다 성격도 워낙 침착하고 발라서 허튼 농담 한번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그를 'LG그룹이 구(舊) LG에서 신(新) LG로' 전환되는 과정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혁신을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적에 집착하지 말고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을 만들 것을 직원들에게 강조한다. LG만의 고객경험을 제공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히기도 했다.

LG전자의 MC사업본부 사장으로 취임한 뒤 개발단계부터 진두지휘한 첫 작품 ‘V10’은 2015년 11월 북미시장에서 첫 판매를 시작해 판매호조를 보였다.

주변기기인 ‘프렌즈’로 시장의 호평을 받았던 G5도 조준호가 “스마트폰을 놀이터(플레이그라운드)로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한국투자신탁과 한국존슨&존슨 등을 거친 뒤 1986년 LG전자 해외영업부문에 입사했다.

1996년 LG경영혁신추진본부 이사대우, 1998년 LG경영혁신추진본부 이사를 역임했고 1999년 LG구조조정본부 이사회지원실 상무보를 맡았다.

2000년 상무로 승진해 LG전자의 정보통신 단말사업본부 단말기획담당으로 일했다.

2002년 LG전자 정보통신 전략담당 부사장, 2004년 LG전자 MC사업본부 북미법인장 부사장, 2008년 LG 경영총괄담당 부사장을 거쳐 2009년 LG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대표이사 부사장이 됐다.

2010년 LG 최고운영책임자(COO)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2015년 1월부터 LG전자 MC사업본부를 맡아 이끌고 있다.

2015년 연말인사에서 LG전자 대표이사에 올랐다. LG전자는 사업본부별 경영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3인 각자대표체제를 구성했다.

2016년 연말인사에서 LG전자가 조성진 부회장 1인CEO체제로 바뀌었으나 현 직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학력

1977년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2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MBA)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여동생으로 조미진씨가 있다.

조미진씨는 인재개발 전문가로 모토롤라에서 20년가량 일한 뒤 2007년 LG디스플레이 상무로 영입됐고 2014년 현대차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리더십개발실장 상무를 맡고 있다.

◆ 상훈

◆ 상훈

어록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소비자 가치는 오디오와 카메라에 있다. V20은 카메라와 오디오기능에 특화된 스마트폰인 만큼 소비자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2016/09/07, V20 출시행사에서)

“V20에 LG전자만의 독특한 가치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우리의 가치를 인정해주시는 고객분들이 많이 생기길 기대하고 있다.” (2016/09/07, V20 출시행사에서)

“체질개선 과정에서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안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추진되는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다.” (2016/05/10,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G5 공개 뒤 기대 이상의 관심을 받아 어깨가 무겁다. 프렌즈를 통해 열린 스마트폰 생태계를 만들겠다.” (2016/03/17, G5개발자콘퍼런스에서)

“비슷한 것을 내놓고 가성비가 좋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길이 아니다.” (2016/02/23, 스페인 바르셀로나 기자간담회에서)

“스마트폰 시대가 지났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린 스마트폰의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다.” (2016/02/21, MWC2016에서 열린 G5 공개행사에서)

“주요 파트너사와 전략적 협업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모바일 결제서비스를 제공하겠다.” (2015/11/19, ‘LG페이’를 선보이며)

“제품을 몇 대 더 파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어떻게 인정받느냐 하는 것이다. LG전자 제품은 독특하고 특별함이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2015/10/01, V10을 출시하면서)

“모델과 기술개발을 동시에 하다 보니 디자인과 성능이 뒤처졌고 선행개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MC사업본부 인력의 15~20%의 소속을 재배치하겠다.” (2015/07, 2분기 실적발표 뒤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G3이 1천만 대 판매를 달성했는데 G4는 그보다 20% 정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5/04, 뉴욕특파원 기자간담회에서)

“우선 한국시장에서 자리 잡고 그다음 미국과 중남미에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뒤에 나머지 시장을 신경 쓰려고 한다. 내년까지 한국, 미국, 중남미 쪽이 주력시장이 될 것 같다.” (2015/04, 뉴욕특파원 기자간담회에서)

“웨어러블 기기는 아직 기술적 단계나 활용성 면에서 본격적 성장을 이루지는 않았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되면 사이즈, 배터리수명 등 여러 측면에서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쯤 되면 대중적 활용을 할 수 있는 모델들이 준비돼서 시장에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2015/03, MWC2015에서)

“의미 있는 3등자리를 확실히 하겠다. 1, 2등이 강력하기 때문에 어떻게 의미 있는 3등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2015/03, MWC2015에서)

“중국업체들이 정말 많이 부상했다. 차이는 있겠지만 상당히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5/03, MWC2015에서)

“소비자들은 LG전자와 아우디의 협업을 계기로 웨어러블기기의 새로운 미래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LG전자는 웨어러블기기 관련 기술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해 나갈 것이다.” (2015/03/02, 아우디와 협력한 제품인 ‘LG워치어베인LTE’를 설명하며)

“여러분이 키와 더불어 꿈과 희망도 함께 키우며 성장해가기를 바란다.” (2012/08/01, 저신장 아동 성장호르몬제 기증식에서)

“GM과 전기자동차 공동개발 협약은 LG의 미래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GM의 전기자동차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2011/08/26, GM과 전기차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하며)

“좋은 기회가 있다면 인수합병을 추진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집중과 투자가 필요한 시기다.” (2009/03/26, LG 주주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북미시장과 고객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제품을 출시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LG전자는 입증된 실적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본격 성장궤도에 진입한 북미 3G시장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2007/04/17, 북미 3G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한 것에 대해)

“북미에서 출시 이전부터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능을 담은 초콜릿폰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바로미터인 북미 시장에서 초콜릿폰으로 LG 모바일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2006/08/01, 초콜릿폰 새 제품을 미국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에 공급하며)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첨단기능과 차별화된 디자인, 철저한 사후관리(AS)로 LG는 미국에서 탑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2005/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LG전자 휴대폰은 젊고 참신하면서 혁신적인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일부 업체는 도태될 수도 있겠지만 LG전자의 성공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04/07/2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휴대폰은 디지털 컨버전스의 핵심 역할을 수행해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해주는 핵심 도구로 승화되고 있다.” (2004/03/23, 북미 최대 무선통신전시회인 ‘CTIA 와이어리스 2004’ 기조연설에서)

◆ 평가

조준호는 LG그룹에서 대표적 전략가로 꼽힌다. 온화하면서도 치밀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V10을 내놓을 때 LG전자의 한 개발자는 조준호를 놓고 “(사장님께서) 묻고 또 물으십니다. 과거엔 그냥 지나쳤을 일도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998년 LG경영혁신 추진본부에서 LG그룹의 구조조정에 큰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 뒤 2004년 북미시장에서 LG전자 휴대폰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에 따라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준호는 LG그룹 안에서 최연소 기록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2002년 43세로 LG전자 정보통신 전략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해 최연소 부사장이 됐다. 2009년 최연소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MC사업본부를 맡게 된 것은 G3의 성공에 이어 LG전자의 스마트폰사업을 한단계 더 끌어올리려는 조처로 풀이됐다.

단말기획담당 임원으로 일하는 등 스마트폰사업뿐 아니라 이동통신 사업자들과 관계도 원활하게 구축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법인장 당시 2004년 초콜릿폰에 이어 2007년 샤인폰까지 연이어 성공시키며 LG전자를 북미 모바일시장 2위로 올려놓았다. 그는 LG전자에서 ‘초콜릿폰 신화’로 통했다.

스마트폰 이해도가 높고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내린다. 미소년 같은 외모로 업계에서 ‘훈남’으로 통한다. 성격은 내성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준호와 오랜 기간 일했던 업계 관계자는 “조 사장은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못하는 데다 성격도 워낙 침착하고 발라서 허튼 농담 한번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그를 'LG그룹이 구(舊) LG에서 신(新) LG로' 전환되는 과정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혁신을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적에 집착하지 말고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을 만들 것을 직원들에게 강조한다. LG만의 고객경험을 제공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히기도 했다.

LG전자의 MC사업본부 사장으로 취임한 뒤 개발단계부터 진두지휘한 첫 작품 ‘V10’은 2015년 11월 북미시장에서 첫 판매를 시작해 판매호조를 보였다.

주변기기인 ‘프렌즈’로 시장의 호평을 받았던 G5도 조준호가 “스마트폰을 놀이터(플레이그라운드)로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 기타

LG전자의 핵심브레인으로 조성진 LG전자 부회장과 함께 ‘조조’로 불렸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술, 담배는 전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LG에서 급여 11억1400만 원, 상여 3억1700만 원 등 보수로 14억3100만 원을 받았다.

2015년 LG에서 급여 1억5600만 원, 상여 5억1800억 원 등 보수로 6억7400만 원을 받았다.

2016년 상반기까지 LG전자에서 보수로 5억1500만 원을 받았다. 보수는 급여 3억6100만 원, 상여 1억5400만 원으로 구성됐다.

LG전자는 조준호의 상반기 상여금과 관련해 “MC사업본부의 영업이익이 2014년 2682억 원에서 2015년 –1196억 원으로 감소했으나 비계량 지표와 관련해 보급형 모델디자인 개선과 프리미엄기능 확대를 통한 라인업보강으로 주력 북미시장에서 보급형 제조사 입지를 강화한 점을 고려해 1억5400만 원을 산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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