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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박범계 법무부 장관
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  |  2021-03-10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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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동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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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록
▲ 박범계 법무부장관.

◆ 생애

박범계는 법무부 장관이다.

문재인정부를 마무리할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1963년 4월27일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약목리에서 태어났다.

검정고시로 대입 자격을 얻었고 군복무 중 시험 준비를 해서 1985년 연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4년에 판사로 임용됐다.

2002년 당시 대통령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를 선언하며 법원을 떠나 정계에 입문했다.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뒤 국회의원에 도전했지만 몇 차례 실패를 맛봤다.

19대 총선에 당선돼 21대 총선까지 3선(대전 서구을)에 성공했다.

민주당에서 적폐청산위원장을 맡는 등 개혁에 앞장섰고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4년차에 법무부 장관으로 낙점됐다. 

◆ 활동의 공과
▲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021년 1월28일 취임 첫 일정으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서울 동부구치소를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 장관 취임 뒤 검찰개혁 행보 이어가
박범계가 법무부 장관이 된 뒤 받아든 첫 번째 과제는 검찰인사였다.

박범계는 2021년 2월 검찰인사를 놓고 윤석열 검찰총장과 만나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박범계는 윤 총장 만남을 놓고 “협의가 아니라 의견 청취일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장관으로서 본인 책임 아래 검찰인사를 실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박범계는 2021년 2월7일 내놓은 검찰인사에서 추미애 전 장관의 검찰인사 흐름을 그대로 이어갔다. 추미애 전 장관이 중용했던 인사들을 그대로 뒀다.

다만 월성원전 수사를 담당한 대전지검 쪽도 자리를 유지했다. 이 사건은 윤 총장이 청와대를 정면 조준하면서 정성을 기울였던 사건으로 박범계는 윤 총장과의 정면충돌을 피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나중에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박범계의 검찰인사를 두고 반발해 사의를 표명하는 '잡음'이 일기도 했다. 신 수석은 2021년 2월22일부터 청와대에 출근해 거취를 문재인 대통령에 일임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나중에 3월4일 윤석열 총장의 사의를 수용하면서 신 수석의 사표도 같은 날 전격 수리했다.

박범계는 2021년 2월22일 발표된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하는 등 윤 총장 압박을 이어갔다.

윤 총장은 2021년 3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놓고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등 2021년에도 검찰개혁을 둘러싼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은 계속 이어졌으나 윤 총장이 3월4일 사의를 밝히면서 일단락됐다.

△제 19, 20, 21대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
박범계는 2012년 제 19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됐으나 2002년 정치에 입문했던 만큼 초선 의원임에도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2012년 5월부터 1년 동안 민주통합당의 원내부대표를 맡았고 초선으로 드물게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간사도 맡는다.

2013년에는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대여 공세에 앞장 선다.

2016년 제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자 국정농단 등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간사를 맡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등을 거쳐 생활적폐청산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에 주도적 역할을 한다.

2020년 제 21대 국회 들어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이른바 '추-윤 갈등' 등 검찰개혁 관련 현안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특히 2020년 국정감사에서 사법연수원 동기로 한 때 가까운 사이였던 윤석열 총장을 향해 “자세를 똑바로 하라”고 호통을 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검찰개혁을 향한 적극적 행보를 인정 받아 2020년 12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기에 이른다.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국회의원에 도전
박범계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법조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대통령직 인수위에 참여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 2003년에는 청와대에서 민정2비서관, 법무비서관 등을 맡았다.

민정2비서관으로 있으면서 ‘굿모닝시티’ 실명보도 파문 등을 겪었고 2004년 제 17대 총선에 도전하기 위해 청와대 비서관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17대 총선 때는 당내 경선에서 밀렸고 18대 총선에서는 낙선하는 등 실패를 이어가다 2012년 제 19대 총선에서 당선된다.

△2002년 노무현 대선후보 지지하며 정치 입문
박범계는 판사로 재직하다 2002년 10월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캠프에 합류하며 정치에 입문한다.

박범계가 노무현 선거캠프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김민석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지지를 철회하고 정몽준 후보의 진영에 합류한 일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박범계는 자서전인 ‘내 인생의 선택’에서 당시 일을 놓고 이렇게 적었다.

“그는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선택을 했다. 그것은 배신이었고 정통성에 대한 반역이었다. (중략) 동시대를 살았던 김민석이 내 가슴속 깊이 이글거리던 정의감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박범계가 판사직을 내놓으면서까지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한 데는 사법연수원생 시절 연수생 자치회에서 발간하던 연수지의 편집장을 맡아 ‘연수생이 존경하는 법조인’ 1위였던 당시 노무현 변호사를 인터뷰한 일이 계기가 됐다.

박범계는 당시 일을 놓고 “원고를 받아보고, 읽어보고, 편집하고, 싣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매료됐다”고 밝혔다.

◆ 비전과 과제
▲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021년 1월31일 대전현충원을 참배한 뒤 방명록을 남기고 있다. 방명록에는 '삼가 호국 영령님들 도우사. 검찰개혁 이루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박범계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2021년 1월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저를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이유는 검찰개혁의 마무리 투수가 돼달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범계는 장관 취임사를 통해 법무부의 구체적 과제로 수사권 개혁법령 시행에 따른 후속조치, 검찰의 사법통제관으로서의 역할 강화, 검찰의 새로운 역할에 맞는 조직개편 등을 꼽았다.

박범계는 검찰개혁의 중요 과제인 수사권 분리를 위해 더불어민주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관련해서도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021년 3월 초 중수청 설치를 놓고 “100번이라도 직을 걸겠다”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검찰총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중수청 사안은 당분간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운 안개 속에 빠졌다. 

박범계는 윤 총장이 물러나면서 더욱 뜨거워진 중수청 추진 국면에서 검찰조직도 다독여야 한다. 윤 총장이 중수청 반대를 명분으로 사실상 정치활동을 시작함에 따라 검찰조직 전체가 크게 동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법무부장관으로서 검찰개혁 외에도 법무행정 혁신도 중요한 과제다.

박범계는 2021년 1월11일 인사청문회 준비 중 기자들과 만나 “법무부 장관으로 일할 수 있게 되면 검찰개혁과 함께 법무행정의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범계는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뒤 첫 공식일정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동부구치소를 방문했다. 교정행정도 법무 행정의 한 축임에도 상대적으로 행정자원 배분에서 소홀한 대접을 받아왔다. 

◆ 평가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12월14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전 대통령 박근혜씨의 사진을 들어보이며 질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혈질이지만 판사 출신인 만큼 합리성과 꼼꼼함도 갖춰 ‘합리적 다혈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에 입문한 계기도 2002년 김민석 전 의원의 탈당이었다고 한다. 당시 김 전 의원은 정몽준 대선후보(무소속) 지지를 선언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같은 당 소속의 노무현 대선후보를 버리고 경쟁 상대방에게 줄을 선 것으로 평가됐다. 

당시 대전지법 판사였던 박범계는 사직서를 내고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선거 캠프에 합류한다. 박범계는 당시 일을 두고 “판사 시절에도 피가 끓었는데 법관은 냉철해야 하기에 (내 성격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언변으로 정당 사이 갈등에서 공격수 역할을 맡아 왔다.

2016년 국정농단 청문회 때 두각을 드러냈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각종 개혁 추진에 앞장서기도 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부모는 모두 장애가 있었던 데다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 때 행방불명이 된다.

박범계는 불우한 가정환경에 방황을 시작해 고등학교 때는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음성서클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집단 패싸움을 벌인 뒤 자퇴한다.

검정고시를 통해 고졸 학력을 얻었고 보충역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대입을 준비해 1985년 3월에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한다.

대학 시절에는 민주화 항쟁에 참여했다가 1987년 대선 결과에 학생운동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깨닫고 본격적으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다.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23기가 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 사건사고

△검찰인사 놓고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과 갈등
박범계는 법무부 장관이 된 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과 갈등을 겪었다.

박범계는 검찰인사를 놓고 신 수석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불거지자 모종의 방법으로 인사안을 문재인 대통령에 보고했다.이는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2021년 2월2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밝히면서 진상의 일부가 확인됐다.

문 대통령은 박범계가 보고한 인사안을 승인했고 신 수석은 이에 반발해 2021년 2월9일 사의를 표명했다.

박범계는 신 수석의 사의를 놓고 2021년 2월18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신 수석과 연락을 했냐는 기자들 질문에는 “그런 건 없다”고 대답했다.

신 수석은 2021년 2월18일부터 나흘 동안 휴식을 취한 뒤 2월22일 문 대통령에게 거취를 일임한다면서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달인 3월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실상 정치 활동 선언을 하면서 사의를 공개적으로 표시하자 그의 사의를 수용하면서 같은 날 신 수석의 사표도 전격 수리했다. 신 수석의 후임으로는 김진국 감사원 감사위원이 임명됐다. 

△각종 설화와 폭행 논란
박범계는 의정활동을 하며 여러 차례 부적절한 발언과 폭행 논란의 당사자가 됐다.

제 21대 국회 들어 2020년 7월 한 라디오 방송에서 “말이 됩네까”라며 북한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북한 말투를 따라해 조롱 논란이 일었다.

같은 해 8월에는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저는 임차인입니다’ 발언을 놓고 “이상한 억양을 쓰지 않고 조리 있게 말한 것은 귀한 사례”라고 발언해 영남 사투리 비하 논란이 불거졌다.

2020년 11월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원 예산을 심사는 과정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의원님 (예산을) 꼭 살려주십시오’ 한 번 하세요”라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뒤에는 2016년 고시생 폭행 의혹, 2019년 패스트트랙 충돌 때 야당 당직자 폭행 의혹 등 과거 폭행 연루 논란이 떠오르기도 했다. 2021년 3월 현재 고시생 폭행 의혹, 패스트트랙 폭행 의혹 등 두 건은 모두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 오심
1999년 2월 전라북도 완주읍 삼례읍 나라슈퍼에서 76세 할머니가 3인조 강도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대열씨 등 3인이 범인으로 지목돼 재판을 받아 유죄판결을 받았다. 박범계는 당시 1심 법원의 배석판사였다.

하지만 사건 발생 17년 뒤인 2016년 진범이 나타났고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씨 등 3인은 재심을 거쳐 2016년 11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범계는 2017년 2월 최씨 등을 국회로 초대해 과거 오심을 사과하고 유사사건의 재발 방지 및 피해 배상을 위한 법안 마련을 약속했다.

박범계는 최씨 등에 “사과를 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죄송하다”며 “비록 사법부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지만 그 이후 어떻게 하느냐가 더 큰 문제로 수사와 사법체계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경력
▲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021년 1월29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4년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로 임용됐다.

판사 임용 뒤 1996년 서울지방법원, 1998년 전주지방법원, 2001년 대전지방법원 등을 거쳤다.

2002년 1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인수위원이 됐다.

2003년 청와대 민정2비서관,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을 지냈다.

2003년 12월 박범계법률사무소를 열었다.

2007년 1월 법무법인 정민 대표변호사를 맡았다.

2008년 6월 민주당 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2010년 민주당 대전광역시당 위원장을 맡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당선돼 3선 의원이 됐다.

2021년 1월 법무부장관에 임명됐다.

◆ 학력

1975년 서울 은천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8년 서울 영등포중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2월 서울 남강고등학교를 자퇴했다. 27년 뒤인 2007년 2월에 남강고에서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1980년 4월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985년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89년 2월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011년 8월 한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배우자 주미영씨와 사이에 2남을 뒀다.

박범계의 부모는 모두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로 후천적 장애인이었다.

박범계의 아버지는 가출을 반복하다 박범계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이후로 행방불명됐다고 한다.

박범계는 자서전에서 아버지를 놓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잠시 집에 머무르다 아이를 낳고 또 훌쩍 나가버리는 것을 반복하는 삶을 계속하셨다. (중략) 내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그후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를 봤다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집안에서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으로 간주하고 어머니와 함께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박범계의 어머니는 2004년 12월에 별세했다.

◆ 상훈

2020년 12월 지식재산대상을 받았다. 제 20대 국회 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입법 활동을 통해 기술탈취 문제 해결 등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 기타

박범계는 2021년 1월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요청안을 통해 본인과 배우자, 두 자녀의 재산으로 12억6천만 원을 신고했다.

재산목록 가운데 집안 선산인 2만여㎡(제곱미터) 임야는 2012년 제 19대 총선 당선 뒤부터 2020년까지 재산목록으로 신고하지 않아 고의적 신고 누락 의혹이 일기도 했다.

병역은 보충역으로 마쳤다. 파출소 경계병으로 14개월 복무했다.

저서로는 2007년 1월 ‘어머니의 손발이 되어’, 2008년 1월 ‘박범계 내 인생의 선택’, 2012년 1월 ‘박 변호사 이럴 땐 어떡하지?’ 등을 냈다.

◆ 어록
▲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2021년 2월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법무부 장관이지만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다.” (2021/2/24, 대전보호관찰소를 방문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검찰개혁 방안을 두고 당론에 따르겠다고 밝히며)

“대통령께서도 그렇고 저도 속도조절이라는 표현을 쓴 적 없다.” (2021/2/24, 대전보호관찰소를 방문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사·기소권 완전분리 추진과 관련해 불거진 '속도 조절론'을 두고)

“검찰은 수사권 개혁법령의 시행에 따른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취해야 한다. 위법한 수사를 통제하는 사법통제관으로서의 역할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하며 그에 걸맞게 검찰조직 또한 개편해야 한다. 검찰은 이제 경찰과 상호협력을 통해 국민의 인권보호는 물론 각종 범죄 대응에 최선을 다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는 견제와 균형을 기조로 유기적 협조도 펼쳐야 한다.” (2021/2/1,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취임식에서)

“현재 검찰총장은 모든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총장’이라 분권화가 절실하다. 총장의 권한을 고검장이나 지검장, 각 검사에게 상당 부분 위임할 필요가 있다.” (2021/1/25,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엄중한 상황에 부족한 사람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돼서 어깨가 참 무겁다.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 (2020/12/30,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소감을 밝히며)

“‘의원님들, (예산을) 한 번 살려주십시오’ 한 번 하세요.” (2020/11/5,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예산심사 전체회의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윤석열이 가진 정의감, 동정심에 의심을 갖게 됐다.” (2020/10/22,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노무현의 기치와 문재인의 국정철학을 계승해 ‘혁신과 공정’의 시대정신으로 대전, 충청, 세종을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로 뻗어나가는 벤처창업단지로 성장시키겠다.” (2020/4/16, 21대 총선 대전 서구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뒤 당선소감으로)

“대전, 충청은 대한민국의 중부권으로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이고 영호남의 조정자다. 중용의 깊은 뜻으로, 진보의 지향을 기반으로 하되 보수의 가치를 포용하고 ‘충청 역할론’의 선두에 있겠다.” (2020/3/27, 온라인 출마회견을 통해 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는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계 문제 중 자식의 문제는 우리의 정서상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것도 현실이다. 국민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후보자의 말도 이런 취지일 것이다.” (2019/8/20,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관련 논란을 놓고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생각을 밝히며)

“결코 문재인 대통령을 홀로 뛰시게 하지 않겠다.” (2018/6/25,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문재인 정부는 촛불 국민의 적폐청산에 대한 여망 위에 탄생한 정부로, 조사와 수사는 중단이 없었으나 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은 아직도 먼 길이다. 촛불 국민의 가장 큰 열망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고 대전 시민들 역시 촛불 국민이다.” (2018/1/11,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대전시장 선거 불출마를 밝히며)

◆ 활동의 공과
▲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021년 1월28일 취임 첫 일정으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서울 동부구치소를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 장관 취임 뒤 검찰개혁 행보 이어가
박범계가 법무부 장관이 된 뒤 받아든 첫 번째 과제는 검찰인사였다.

박범계는 2021년 2월 검찰인사를 놓고 윤석열 검찰총장과 만나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박범계는 윤 총장 만남을 놓고 “협의가 아니라 의견 청취일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장관으로서 본인 책임 아래 검찰인사를 실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박범계는 2021년 2월7일 내놓은 검찰인사에서 추미애 전 장관의 검찰인사 흐름을 그대로 이어갔다. 추미애 전 장관이 중용했던 인사들을 그대로 뒀다.

다만 월성원전 수사를 담당한 대전지검 쪽도 자리를 유지했다. 이 사건은 윤 총장이 청와대를 정면 조준하면서 정성을 기울였던 사건으로 박범계는 윤 총장과의 정면충돌을 피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나중에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박범계의 검찰인사를 두고 반발해 사의를 표명하는 '잡음'이 일기도 했다. 신 수석은 2021년 2월22일부터 청와대에 출근해 거취를 문재인 대통령에 일임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나중에 3월4일 윤석열 총장의 사의를 수용하면서 신 수석의 사표도 같은 날 전격 수리했다.

박범계는 2021년 2월22일 발표된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하는 등 윤 총장 압박을 이어갔다.

윤 총장은 2021년 3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놓고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등 2021년에도 검찰개혁을 둘러싼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은 계속 이어졌으나 윤 총장이 3월4일 사의를 밝히면서 일단락됐다.

△제 19, 20, 21대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
박범계는 2012년 제 19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됐으나 2002년 정치에 입문했던 만큼 초선 의원임에도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2012년 5월부터 1년 동안 민주통합당의 원내부대표를 맡았고 초선으로 드물게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간사도 맡는다.

2013년에는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대여 공세에 앞장 선다.

2016년 제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자 국정농단 등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간사를 맡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등을 거쳐 생활적폐청산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에 주도적 역할을 한다.

2020년 제 21대 국회 들어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이른바 '추-윤 갈등' 등 검찰개혁 관련 현안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특히 2020년 국정감사에서 사법연수원 동기로 한 때 가까운 사이였던 윤석열 총장을 향해 “자세를 똑바로 하라”고 호통을 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검찰개혁을 향한 적극적 행보를 인정 받아 2020년 12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기에 이른다.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국회의원에 도전
박범계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법조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대통령직 인수위에 참여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 2003년에는 청와대에서 민정2비서관, 법무비서관 등을 맡았다.

민정2비서관으로 있으면서 ‘굿모닝시티’ 실명보도 파문 등을 겪었고 2004년 제 17대 총선에 도전하기 위해 청와대 비서관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17대 총선 때는 당내 경선에서 밀렸고 18대 총선에서는 낙선하는 등 실패를 이어가다 2012년 제 19대 총선에서 당선된다.

△2002년 노무현 대선후보 지지하며 정치 입문
박범계는 판사로 재직하다 2002년 10월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캠프에 합류하며 정치에 입문한다.

박범계가 노무현 선거캠프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김민석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지지를 철회하고 정몽준 후보의 진영에 합류한 일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박범계는 자서전인 ‘내 인생의 선택’에서 당시 일을 놓고 이렇게 적었다.

“그는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선택을 했다. 그것은 배신이었고 정통성에 대한 반역이었다. (중략) 동시대를 살았던 김민석이 내 가슴속 깊이 이글거리던 정의감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박범계가 판사직을 내놓으면서까지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한 데는 사법연수원생 시절 연수생 자치회에서 발간하던 연수지의 편집장을 맡아 ‘연수생이 존경하는 법조인’ 1위였던 당시 노무현 변호사를 인터뷰한 일이 계기가 됐다.

박범계는 당시 일을 놓고 “원고를 받아보고, 읽어보고, 편집하고, 싣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매료됐다”고 밝혔다.


◆ 비전과 과제
▲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021년 1월31일 대전현충원을 참배한 뒤 방명록을 남기고 있다. 방명록에는 '삼가 호국 영령님들 도우사. 검찰개혁 이루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박범계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2021년 1월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저를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이유는 검찰개혁의 마무리 투수가 돼달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범계는 장관 취임사를 통해 법무부의 구체적 과제로 수사권 개혁법령 시행에 따른 후속조치, 검찰의 사법통제관으로서의 역할 강화, 검찰의 새로운 역할에 맞는 조직개편 등을 꼽았다.

박범계는 검찰개혁의 중요 과제인 수사권 분리를 위해 더불어민주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관련해서도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021년 3월 초 중수청 설치를 놓고 “100번이라도 직을 걸겠다”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검찰총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중수청 사안은 당분간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운 안개 속에 빠졌다. 

박범계는 윤 총장이 물러나면서 더욱 뜨거워진 중수청 추진 국면에서 검찰조직도 다독여야 한다. 윤 총장이 중수청 반대를 명분으로 사실상 정치활동을 시작함에 따라 검찰조직 전체가 크게 동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법무부장관으로서 검찰개혁 외에도 법무행정 혁신도 중요한 과제다.

박범계는 2021년 1월11일 인사청문회 준비 중 기자들과 만나 “법무부 장관으로 일할 수 있게 되면 검찰개혁과 함께 법무행정의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범계는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뒤 첫 공식일정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동부구치소를 방문했다. 교정행정도 법무 행정의 한 축임에도 상대적으로 행정자원 배분에서 소홀한 대접을 받아왔다. 


◆ 평가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12월14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전 대통령 박근혜씨의 사진을 들어보이며 질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혈질이지만 판사 출신인 만큼 합리성과 꼼꼼함도 갖춰 ‘합리적 다혈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에 입문한 계기도 2002년 김민석 전 의원의 탈당이었다고 한다. 당시 김 전 의원은 정몽준 대선후보(무소속) 지지를 선언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같은 당 소속의 노무현 대선후보를 버리고 경쟁 상대방에게 줄을 선 것으로 평가됐다. 

당시 대전지법 판사였던 박범계는 사직서를 내고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선거 캠프에 합류한다. 박범계는 당시 일을 두고 “판사 시절에도 피가 끓었는데 법관은 냉철해야 하기에 (내 성격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언변으로 정당 사이 갈등에서 공격수 역할을 맡아 왔다.

2016년 국정농단 청문회 때 두각을 드러냈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각종 개혁 추진에 앞장서기도 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부모는 모두 장애가 있었던 데다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 때 행방불명이 된다.

박범계는 불우한 가정환경에 방황을 시작해 고등학교 때는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음성서클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집단 패싸움을 벌인 뒤 자퇴한다.

검정고시를 통해 고졸 학력을 얻었고 보충역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대입을 준비해 1985년 3월에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한다.

대학 시절에는 민주화 항쟁에 참여했다가 1987년 대선 결과에 학생운동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깨닫고 본격적으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다.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23기가 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 사건사고

△검찰인사 놓고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과 갈등
박범계는 법무부 장관이 된 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과 갈등을 겪었다.

박범계는 검찰인사를 놓고 신 수석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불거지자 모종의 방법으로 인사안을 문재인 대통령에 보고했다.이는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2021년 2월2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밝히면서 진상의 일부가 확인됐다.

문 대통령은 박범계가 보고한 인사안을 승인했고 신 수석은 이에 반발해 2021년 2월9일 사의를 표명했다.

박범계는 신 수석의 사의를 놓고 2021년 2월18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신 수석과 연락을 했냐는 기자들 질문에는 “그런 건 없다”고 대답했다.

신 수석은 2021년 2월18일부터 나흘 동안 휴식을 취한 뒤 2월22일 문 대통령에게 거취를 일임한다면서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달인 3월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실상 정치 활동 선언을 하면서 사의를 공개적으로 표시하자 그의 사의를 수용하면서 같은 날 신 수석의 사표도 전격 수리했다. 신 수석의 후임으로는 김진국 감사원 감사위원이 임명됐다. 

△각종 설화와 폭행 논란
박범계는 의정활동을 하며 여러 차례 부적절한 발언과 폭행 논란의 당사자가 됐다.

제 21대 국회 들어 2020년 7월 한 라디오 방송에서 “말이 됩네까”라며 북한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북한 말투를 따라해 조롱 논란이 일었다.

같은 해 8월에는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저는 임차인입니다’ 발언을 놓고 “이상한 억양을 쓰지 않고 조리 있게 말한 것은 귀한 사례”라고 발언해 영남 사투리 비하 논란이 불거졌다.

2020년 11월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원 예산을 심사는 과정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의원님 (예산을) 꼭 살려주십시오’ 한 번 하세요”라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뒤에는 2016년 고시생 폭행 의혹, 2019년 패스트트랙 충돌 때 야당 당직자 폭행 의혹 등 과거 폭행 연루 논란이 떠오르기도 했다. 2021년 3월 현재 고시생 폭행 의혹, 패스트트랙 폭행 의혹 등 두 건은 모두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 오심
1999년 2월 전라북도 완주읍 삼례읍 나라슈퍼에서 76세 할머니가 3인조 강도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대열씨 등 3인이 범인으로 지목돼 재판을 받아 유죄판결을 받았다. 박범계는 당시 1심 법원의 배석판사였다.

하지만 사건 발생 17년 뒤인 2016년 진범이 나타났고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씨 등 3인은 재심을 거쳐 2016년 11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범계는 2017년 2월 최씨 등을 국회로 초대해 과거 오심을 사과하고 유사사건의 재발 방지 및 피해 배상을 위한 법안 마련을 약속했다.

박범계는 최씨 등에 “사과를 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죄송하다”며 “비록 사법부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지만 그 이후 어떻게 하느냐가 더 큰 문제로 수사와 사법체계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경력
▲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021년 1월29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4년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로 임용됐다.

판사 임용 뒤 1996년 서울지방법원, 1998년 전주지방법원, 2001년 대전지방법원 등을 거쳤다.

2002년 1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인수위원이 됐다.

2003년 청와대 민정2비서관,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을 지냈다.

2003년 12월 박범계법률사무소를 열었다.

2007년 1월 법무법인 정민 대표변호사를 맡았다.

2008년 6월 민주당 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2010년 민주당 대전광역시당 위원장을 맡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당선돼 3선 의원이 됐다.

2021년 1월 법무부장관에 임명됐다.

◆ 학력

1975년 서울 은천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8년 서울 영등포중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2월 서울 남강고등학교를 자퇴했다. 27년 뒤인 2007년 2월에 남강고에서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1980년 4월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985년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89년 2월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011년 8월 한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배우자 주미영씨와 사이에 2남을 뒀다.

박범계의 부모는 모두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로 후천적 장애인이었다.

박범계의 아버지는 가출을 반복하다 박범계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이후로 행방불명됐다고 한다.

박범계는 자서전에서 아버지를 놓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잠시 집에 머무르다 아이를 낳고 또 훌쩍 나가버리는 것을 반복하는 삶을 계속하셨다. (중략) 내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그후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를 봤다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집안에서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으로 간주하고 어머니와 함께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박범계의 어머니는 2004년 12월에 별세했다.

◆ 상훈

2020년 12월 지식재산대상을 받았다. 제 20대 국회 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입법 활동을 통해 기술탈취 문제 해결 등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 기타

박범계는 2021년 1월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요청안을 통해 본인과 배우자, 두 자녀의 재산으로 12억6천만 원을 신고했다.

재산목록 가운데 집안 선산인 2만여㎡(제곱미터) 임야는 2012년 제 19대 총선 당선 뒤부터 2020년까지 재산목록으로 신고하지 않아 고의적 신고 누락 의혹이 일기도 했다.

병역은 보충역으로 마쳤다. 파출소 경계병으로 14개월 복무했다.

저서로는 2007년 1월 ‘어머니의 손발이 되어’, 2008년 1월 ‘박범계 내 인생의 선택’, 2012년 1월 ‘박 변호사 이럴 땐 어떡하지?’ 등을 냈다.


◆ 어록
▲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2021년 2월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법무부 장관이지만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다.” (2021/2/24, 대전보호관찰소를 방문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검찰개혁 방안을 두고 당론에 따르겠다고 밝히며)

“대통령께서도 그렇고 저도 속도조절이라는 표현을 쓴 적 없다.” (2021/2/24, 대전보호관찰소를 방문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사·기소권 완전분리 추진과 관련해 불거진 '속도 조절론'을 두고)

“검찰은 수사권 개혁법령의 시행에 따른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취해야 한다. 위법한 수사를 통제하는 사법통제관으로서의 역할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하며 그에 걸맞게 검찰조직 또한 개편해야 한다. 검찰은 이제 경찰과 상호협력을 통해 국민의 인권보호는 물론 각종 범죄 대응에 최선을 다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는 견제와 균형을 기조로 유기적 협조도 펼쳐야 한다.” (2021/2/1,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취임식에서)

“현재 검찰총장은 모든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총장’이라 분권화가 절실하다. 총장의 권한을 고검장이나 지검장, 각 검사에게 상당 부분 위임할 필요가 있다.” (2021/1/25,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엄중한 상황에 부족한 사람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돼서 어깨가 참 무겁다.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 (2020/12/30,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소감을 밝히며)

“‘의원님들, (예산을) 한 번 살려주십시오’ 한 번 하세요.” (2020/11/5,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예산심사 전체회의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윤석열이 가진 정의감, 동정심에 의심을 갖게 됐다.” (2020/10/22,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노무현의 기치와 문재인의 국정철학을 계승해 ‘혁신과 공정’의 시대정신으로 대전, 충청, 세종을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로 뻗어나가는 벤처창업단지로 성장시키겠다.” (2020/4/16, 21대 총선 대전 서구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뒤 당선소감으로)

“대전, 충청은 대한민국의 중부권으로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이고 영호남의 조정자다. 중용의 깊은 뜻으로, 진보의 지향을 기반으로 하되 보수의 가치를 포용하고 ‘충청 역할론’의 선두에 있겠다.” (2020/3/27, 온라인 출마회견을 통해 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는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계 문제 중 자식의 문제는 우리의 정서상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것도 현실이다. 국민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후보자의 말도 이런 취지일 것이다.” (2019/8/20,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관련 논란을 놓고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생각을 밝히며)

“결코 문재인 대통령을 홀로 뛰시게 하지 않겠다.” (2018/6/25,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문재인 정부는 촛불 국민의 적폐청산에 대한 여망 위에 탄생한 정부로, 조사와 수사는 중단이 없었으나 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은 아직도 먼 길이다. 촛불 국민의 가장 큰 열망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고 대전 시민들 역시 촛불 국민이다.” (2018/1/11,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대전시장 선거 불출마를 밝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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